[김우룡 교수의 TV워치]시청률이 ‘主’ 시청자는 ‘客’

  • 입력 2006년 2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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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었던 뉴턴 미노는 저 유명한 ‘광막한 황무지 연설(a vast wasteland speech)’을 하였다.

“여러분이 TV 수상기 앞에 직접 앉아 보십시오. 방송이 종료될 때까지 TV화면을 주시해 보십시오. 여러분께서는 틀림없이 광막한 황무지를 관찰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련의 게임 쇼, 폭력물,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전적으로 믿기 어려운 틀에 박힌 코미디, 저질 드라마, 신체상해, 폭력, 사디즘, 살인, 서부 악당, 사설탐정, 깡패, 더 많은 폭력 그리고 만화 따위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외에도 끝이 없습니다. 아우성치고 감언으로 속이는 불쾌한 광고들….”

38세의 젊은 변호사 출신으로 FCC 위원장이 된 미노는 1961년 5월 9일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방송협회 연례총회에서 저질 오락프로그램으로 시청률 경쟁에 여념이 없던 방송계를 질타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텔레비전에는 보도 정보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가 크게 증가하였고 5년마다 갱신되는 방송사 재허가 심사는 크게 강화되었다.

우리 방송계 역시 시청자가 아니라 시청률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 방송 매체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이용해 이윤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지상파 TV 3사의 편성에서는 도무지 ‘차이’와 ‘다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선 값싼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있다. 게임 퀴즈 콘테스트 그리고 수다와 가십을 주제로 하는 토크쇼…. 우리 TV가 천박한 놀이방, 태평성대 노래방, 짝짓기 사랑방이 된 지 오래이다.

아무리 멀티플레이어 시대라고 하지만 도대체 자기 전문분야가 없다. 가수 탤런트 개그맨 슈퍼모델 리포터가 이곳저곳 몰려다닌다. 심지어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조차 연예인화하고 있고 기상캐스터가 오락프로 진행자로 맹활약 중이다.

아침에 나온 연예인이 밤에 나오고, SBS에 나온 연예인이 KBS에도 등장한다. ‘연예인 공화국’이 따로 없다. 아무리 영웅 없는 시대에 영웅이 스타라고 하지만 ‘회전문 출연’은 갈수록 심하다.

TV는 왜 연예인을 이처럼 선호하는가. 우리들은 왜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집구경을 가야 하고 침실을 기웃거려야 하는가. 전형적인 ‘훔쳐보기’ 취향이다. KBS ‘여유만만’은 지난주 가수 김상희 유훈근 씨 부부의 침실구경을 시켜줬다. KBS2 ‘비타민’에는 탤런트 이세창 씨 가족이 등장하였다. 방송은 ‘엿듣기’도 좋아한다. 첫 키스는 어디서 하셨어요? 던지는 질문이 고작 이 수준이다.

TV는 문화를 배양하고 규범화한다. TV는 사람들이 현실을 인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배양이론’이다. TV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방송사들은 직시해야 한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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