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러움은 영화 후반부 인간의 나약한 내면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질 때마다 확인되는 삶의 실체에서 절정을 이룬다.
삶을 포장하는 모든 수사와 허위를 걷어내고 마주치는 주인공들의 인생은 보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생의 진면목이다.》
분히 상업성을 고려한 영화 제목은 영화의 메시지와는 상관없다. 영화를 보고나면 오히려 원제 ‘은밀한 것들(Secret things)’이란 제목을 곱씹게 된다. 그것은 삶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에 주목하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담긴 은유적 표현이다. 감독은 빛보다는 어둠을 표현하는 데 더 익숙하다는 점에서 위악적이다.
영화는 우선 여성의 성을 ‘권력’이란 측면에서 초점을 맞췄다. 매혹적인 두 여자가 대기업에 입사해 남자 중역들을 유혹한다는 설정은 자칫 여성성을 무기로 사회적 힘을 얻는 ‘소파(sofa)승진’ 류의 정형화된 스토리를 연상케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겐 남자들을 향한 복수심이나 성적 열등감은 없다. 다만 (남자와 똑같이) 성을 권력화하고 싶은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가히 여성 상위의 새로운 버전이다.
성인클럽 누드 쇼걸 나탈리와 바텐더 상드린은 지하철 플랫폼에서 사랑을 나누고 파리 시내 중심가를 코트 아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활보한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유혹이라기보다 자신들을 향한 일종의 시위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금기를 넘어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떻게 남자를 유혹할지 묻는 상드린에게 나탈리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를 연구해서 약한 면과 열정을 찾아내. 그게(남자가 원하는 게) 돈이든 자동차든 성공이든 간에…. 정보를 수집한 뒤 유혹하고 일단 선택하면 굴복시켜. … 사귀되 사랑하면 안돼. 사랑한다고 인생이 달라지지 않아.’
나탈리는 욕망 자체에 휘둘리지 않고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에 골몰하는, 욕망을 객관화시켜 게임처럼 만드는 여자다. 그래서인지 섹스나 절망 같은 뜨거운 감정을 연기할 때도 그녀의 얼굴은 마치 인조 인형처럼 차갑다.
이 영화가 단지 여성이 성적 매력을 이용해 이를 권력화하는 이야기에 그쳐 버렸다면,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힘은 여자의 욕망에서 출발해 인간 일반의 욕망으로 향했다는 점이다. 그토록 강하고 전략적이었던 나탈리는 자신보다 더 내면이 강한 남자 앞에서 철저히 무너지고 사랑을 희롱하려던 상드린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 앞에서 허탈감에 빠진다.
인간 내면에 잠복한 자학과 피학 심리를 극단적인 이미지로 파헤치는 장클로드 브리소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어두컴컴한 욕망을 밝은 곳으로 불러들여 기존 사회의 가치관을 마음대로 전복시켜 온 자신의 위악적 연출 방식에 충실하다.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온갖 섹스의 형태들을 다양한 이미지로 나열하는 파격적인 방식과 행동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대로 행동’하는 캐릭터들의 과감한 성격 묘사를 통해 감독은 애초부터 인생에서 강자와 약자는 없다는 것, 약자는 단지 상상력의 패배라는 것, 진실로 강한 것은 눈에 보이는 권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당당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18세 이상 관람가.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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