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사라져 가는 우리 옛말을 찾으려고 땅이름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옛날 땅이름을 보존하기 위해 고서와 고지도를 뒤져가며 심층 조사를 하다 보니 땅이름이 미래의 땅 쓰임새와 신기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죠.”
서울 주변 신도시에도 그런 사례가 많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는 이곳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돼 ‘모두 많이’ 모일 곳임을 예고라도 하듯 ‘모두만이’라는 땅이름이 있다. 안양의 ‘들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됐다.
이름이 바뀌어 운명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서울 용산에는 덩굴풀이 많았던지 이곳을 지나던 개천의 이름은 원래 덩굴풀내라는 뜻인 만초천(蔓草川)이었다. 이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빛날 욱(旭)자가 쓰인 욱천(旭川)으로 바뀌었다. 복개되어 사라진 이 냇줄기 터의 지금 쓰임새는? 화려한 불빛을 쏟아내는 용산전자상가다.
배 씨는 “함부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지금도 이름으로 그 미래가 감이 잡히는 땅이 몇 곳 있다”며 “땅의 미래가 전개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흥미진진하다”고 웃었다.
그렇다고 그가 숙명론자는 아니다. 배 씨는 “사람이든 땅이든 주어진 이름을 소중하게 불러주고 귀하게 대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책의 독자들도 땅이름을 통해 이 땅에 깃든 풀 한포기라도 소중한 것임을 마음속에 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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