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개막공연에서 구자범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듣던 대로 많은 연습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오케스트라가 자신감을 잃고 흔들리는 부분은 전혀 없었고, 구자범은 가수와의 앙상블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무리하게 가수의 행보에 맞추지 않고 오히려 오케스트라를 힘 있게 독려함으로써 탄력 넘치는 연주를 이어갔다. 심한 속도감이 감돌았던 1막 피날레는 그 예가 될 것이다. 큰 장면이 바뀔 때마다 관현악의 분위기를 일신시키면서 참신한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믿음직했고, 철학도 출신이라 너무 심오하게 분위기를 이끌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선입견에 불과했다. 구자범은 누구 못지않게 극의 클라이맥스를 역동적으로 부풀릴 줄 아는 지휘자였다.
산티키의 연출은 안정적이고 화려한 무대 장치를 잘 활용하여 군중의 배치와 동선을 효과적으로 처리했다. 특히 한국적 아름다움이 가미된 무용단을 눈요깃거리를 넘어선 공연의 핵심으로 부각시킨 점은 탁월했다. 다만 코메디아 델라르테풍의 산물인 핑, 팡, 퐁의 희극적 캐릭터를 살리려면 뭔가 더 장난스러운 장치가 필요했다.
칼라프 왕자 역의 신예 테너 신동원은 경탄할 만한 고음부의 두성 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오케스트라를 뚫을 큰 성량과 중저음대의 매력을 보강한다면 큰 가수가 될 것이다. 투란도트 공주 역의 서혜연은 불같은 카리스마보다는 차가운 얼음공주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호연이었다. 풍요로운 음색임에도 리릭 소프라노의 분위기를 독특하게 소화하는 류 역의 오미선은 이번에도 그 몫을 충분히 해냈다. 군중 역을 노래한 국립오페라합창단과 국립합창단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하다는 찬사를 표해도 좋겠다.
유형종 오페라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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