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민심을 느끼자 패왕은 갑자기 팽성이 한군의 철옹성(鐵甕城)이라도 되는 듯 떨어뜨릴 자신이 없어졌다.
‘아니 되겠다. 자칫하면 제나라 쪽에서 내려온 한나라 세력과 진성에서 뒤쫓아 오는 한왕의 대군 사이에 끼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차라리 군사를 남쪽으로 빼내 등 뒤의 걱정이라도 더는 것만 못하다. 팽성 남쪽에서 지키기도 좋고 나아가기도 좋은 땅을 골라 그곳을 근거지로 삼고 세력을 키워 보자. 시간을 벌고 지리(地利)를 얻은 뒤에 한왕의 대군을 그리로 불러들여 결판을 내는 것도 좋은 계책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고 유심히 지세를 살피다가 해하(垓下)를 알맞은 땅으로 골랐다.
해하는 패군(沛郡) 효현(Q縣)에 있는 큰 읍락(邑落=聚邑)이다. 해(垓)는 제방(堤)의 이름이라고도 하나 어떤 이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로 이루어진 높은 언덕(高岡絶巖·고강절암)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 언덕 곁으로 읍락이 펼쳐지고 제방이 나 있어 부근 땅 이름이 ‘해 아래’ 곧 해하가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해하는 남쪽으로 회수(淮水)가 멀지 않아 등 뒤에서 강한 적이 나타나는 것을 걱정할 일이 없을뿐더러 몰리는 군사들에게는 오히려 배수(背水)의 각오를 다지게 할 수도 있었다. 또 서초에서 강동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이면서 한편으로는 강동에서 서초로 밀고 드는 발판이 될 수도 있는 땅이었다. 거기다가 인근에는 넓은 벌판이 있어 대군이 회전(會戰)할 수도 있고, 허물어졌지만 고치면 쓸 만한 성곽과 방벽이나 보루를 쌓으면 적은 군사로 지키기에 좋은 지세도 있었다.
해하에 자리 잡은 패왕은 낡은 성곽을 고치고 사방에서 오는 적을 막기에 좋은 곳에 든든한 진채를 세우게 했다. 특히 그 진채는 두꺼운 방벽을 두르고 높은 보루를 쌓아 웬만한 성채 못지않게 만들었다. 초군의 형세가 클 때는 고친 성곽과 더불어 기각지세를 이루며 적의 대군과 맞서고, 형세가 불리할 때는 그 진채 안으로 들어가 굳게 지키는 데 쓰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살펴볼 것은 패왕이 그렇게 해하에서 버티기로 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뒷사람들의 논의이다. 곧 그와 같은 결정이 바로 패왕이 지금껏 떨치던 기세에 비해 너무도 급속하고 허망한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는 주장이 그러하다.
그들에 따르면, 패왕은 이미 팽성이 떨어졌을 때 강동으로 물러났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강수(江水)를 방벽 삼아 지키면서 세력을 회복해 다시 북벌(北伐)에 나섰으면 천하쟁패의 향방은 달라졌을 거라고 한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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