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그림 속 저항의 역사 찾기

  • 입력 2006년 3월 2일 03시 38분


소정 변관식의 ‘진양성 풍경’(부분).
소정 변관식의 ‘진양성 풍경’(부분).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 특별전이 5월 7일까지 열리고 있는 덕수궁미술관. 세밀한 관찰과 답사를 바탕으로 한국화의 새 경지를 개척한 소정의 그림을 보기 위해 요즘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층 제1전시실에 들어서면 왼쪽 벽에 소정의 미공개작 ‘진양성 풍경’(40×130cm)이 걸려 있다. 1929년 가을 소정이 5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경남 진주시에 사는 인당 이판수의 요청을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그림이다.

남강이 흐르는 진양성(진주성) 풍경을 사실적이면서도 운치 있게 표현한 작품으로만 알고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그림 속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뭔가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있다. 촉석루 앞에 일제가 세운 ‘진주신사’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발굴한 국립현대미술관 정준모 조사연구팀장은 “일제가 우리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1917년 10월 14일 건립한 ‘진주신사’를 담고 있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라며 “조선신사는 주로 사진이나 강제로 신사 참배에 동원됐던 학생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으나 당시 회화 작품 속에 담겨 전해지는 것은 이 작품이 거의 유일하다”고 소개했다. 이 그림을 통해 당시 신사의 위치를 확인하는 한편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혈안이 되었는지를 가늠케 하는 사료적 가치가 크다는 설명이다.

일제는 민족의 호국 의지가 서린 촉석루 앞에 신사를 세워, 진주의 충절과 애국의 의지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려 했다. 소정은 이를 놓치지 않고 묘사함으로써 생생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3·1절에 보는 ‘진양성 풍경’. 때론 한 폭의 그림이 역사를 증언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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