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 입력 2006년 3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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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윌리엄 새들러 지음·김경숙 옮김/320쪽·1만2000원·사이

‘황무지’의 시인 T S 엘리엇은 나이 일흔에 이르러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나는 사람이 점점 늙어 간다는 걸 믿지 않아!/그보다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 딱 멈춰 서서/그때부터 썩어 가는 거라고 생각하지!”

인생의 전성기가 이미 지나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죽음이 머리 위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중년은 시작된다.

우리 사회에서 중년이 매력적인 적은 결코 없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치명적인 ‘5D’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쇠퇴(decline) 질병(disease) 의존(dependency) 우울(depression) 노망(decrepitude). 그리고 그 이후에는 여섯 번째의 끔찍한 ‘D’, 죽음(death)이 기다리고 있다.

사회는 중년 이후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채근한다. “안전띠를 매고 착륙할 준비를 하세요!”

18세기에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40세였으나 21세기 들어 현대인의 수명은 80세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렇듯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는 데 비해 우리는 너무 일찍 늙어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장수혁명은 우리에게 앞 세대보다 30년 이상의 ‘수명 보너스(life bonus)’를 안겨 주었다. 40대에서 70대 중후반까지 우리 생애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제3의 연령기, ‘서드 에이지(third age)’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축복이자 시련이다. 새로운 도전이다.

이 책은 마흔 이후 30년, 그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한 지혜의 나침반이다. 피로감과 비애에 젖어 있는 중년들에게 ‘인생 이모작’을 위해 다시 이륙할 준비를 하라며 ‘21세기형 중년’을 위한 새로운 삶의 패턴을 모색한다.

미국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중년 문제를 연구해 온 저자. 그는 마흔이 넘은 남녀 200여 명을 인터뷰한 뒤 그중 50여 명을 12년간 추적 조사했다. 그들은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봄날처럼 화창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인생의 전반기에 ‘청춘의 성장’이 있다면, 후반기엔 ‘중년의 성장’이 있었다!”

그 ‘2차 성장’을 위해 저자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일에 대한 사고, 일에 대한 개념을 바꿔라. 직장이 됐든 단순노동이 됐든 돈뿐 아니라 여가까지도 포괄하도록 ‘일의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라.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해선 먼저 자기 자신을 배려하라. 삶의 경험에서 더는 배울 게 없다는 무심함을 경계하라.

나이 듦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떨쳐 버려야 한다. ‘중년의 위기’란 단지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나이 듦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삶의 타성이다. 나이 듦의 신화, 베티 프리던이 말하는 ‘나이의 신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야 한다.

“중년은 더는 세월의 사다리를 내려가는 존재가 아니다. 서둘러 짐을 싸기에는 너무 이르다. 중년의 삶을 놓친다면 우리는 너무 짧게 살고 너무 길게 죽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젠 젊은 시절 사회와 타협했던 우리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풀어 주어야 한다. ‘성공’에 짓눌려 온 과거의 자아에 날개를 달아 주어야 한다.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숨통을 틔워 주라!

나아가 우리는 자신이 늙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다.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상실이 뒤따른다. 우리는 현실적인 낙관주의로 새로운 출발과 종말을 통합하고, 나이 들수록 점점 젊어지는 것과 늙어 가는 것을 하나로 껴안아야 한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선다는 것은 우리가 삶에서 누리고 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게 한다. 그것은 삶과 화해하게 하며, 우선순위를 다시 조정하게 하고, 그 무엇보다 삶에 전념하게 한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에서 랍비 벤 에즈라는 이렇게 노래하지 않던가.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자!/가장 좋을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인생의 후반, 그것을 위해 인생의 초반이 존재하나니….”

원제 ‘The Third Age’(2000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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