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회사에 이로운 일은 경영진에게도 이로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연 그럴까?
1979년 크라이슬러의 몰락은 예견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오일 쇼크로 유가가 치솟고 있는데도 집채만 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 독일과 일본에선 소형 자동차를 쏟아 내고 있었다.
크라이슬러는 당연히 대형 자동차 생산을 중단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는 적어도 5년간의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결정이었다. 주가 급락과 수천 명 근로자의 감원이 불가피한 구조조정이었다.
누가 그 비난을 감당할 것인가. 중역회의는 끝내 결단을 미뤘다. “우리처럼 규모가 큰 회사는 실험의 대상도 아니고 유행에 따라 움직여서도 안 됩니다!”
크라이슬러의 중역들은 ‘50대 남성들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권력의 중심에는 50대 남성이 우글거린다. 그러나 그들은 조직의 10년 후를 생각하지 않는다. 은퇴할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10년 뒤에 회사가 번창하고, 다음 세대의 경영자들이 꿀맛 같은 열매를 따먹는다? 그건 정말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들은 내심 루이 15세 시대의 농담을 새기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죽고 나면 대홍수가 닥치리니!”
이 책은 재계의 권력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중세의 혼탁한 정치를 꿰뚫어 봤던 마키아벨리의 눈을 빌려 대기업과 고위 비즈니스맨들의 생리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직장인들의 꿈인 동시에 미지의 세계인 기업의 상층부, 그 ‘꼭대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샅샅이 까발린다.
회사를 움직이는 경영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가? 그들이 회사 내 권력을 장악하고 지키는 수단은 무엇인가? 독일 재계의 실화들을 익명으로 요약하며 그 생생한 실상을 중계한다.
마키아벨리를 전공한 법학자인 저자는 50대 경영자들을 ‘늙은 생쥐’라고 부른다.
늙은 생쥐들은 무능하고 비생산적이지만 권력에 취해 있다. 파워게임이야말로 이들의 전공이다. 늙은 생쥐들은 견고한 ‘동업자 서클’을 이루고 이질적인 인물의 침입을 경계한다. 창의적인 기분파 ‘멋쟁이 새’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검은 늑대’가 부상하면 아예 싹부터 자른다. “그는 가정적으로 문제가 많아!”
늙은 생쥐들의 장기 집권은 기업 컨설턴트나 헤드헌터들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다. 이들은 상부상조하며 끊임없이 늙은 생쥐를 배출하고, 용도 폐기된 늙은 생쥐들을 다른 기업으로 보내 재활용한다.
이 책의 내용은 신랄하다. “경영 전선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은 너무도 기괴해서 이를 진실에 가깝게 묘사하려니 풍자가 되고 말았다”는 게 저자의 변명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생존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회사 인간’들을 위해 금단의 처세술을 넌지시 일러 준다.
외부 전문가를 끌어들여 그들의 평가서를 유리하게 이용하라. 유행처럼 번진 위기 시뮬레이션으로 사내 입지를 구축하라. 맞아도 좋고 틀려도 좋다. 회사를 옮길 때는 마치 새로운 남자 친구를 사귀려는 여자처럼 조심스럽게 굴어야 한다….
그리고 귓전에 대고 이렇게 은밀히 속닥인다.
회사는 문제가 터지면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다. 그 후보에 들지 마라. 사내 동맹은 필수요, 외부 인맥은 안전장치다. 섣불리 회사를 살리겠다고 나서지 마라. 라이벌을 함정에 빠뜨리고 싶거든 뒷전에서 그의 건강이나 사생활을 걱정해 주는 척 하라. 지적을 받으면 상대가 부담스러울 만큼 현란한 통계 수치를 들이대라!
원제 ‘Der Kleine Machiavelli’(2001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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