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전처도 아니고 ‘아내’가 ‘결혼’했다니?
말 그대로 주인공의 현재 아내는 다른 남자와 ‘또’ 결혼을 했다. 기묘한 제목과 소설의 직설적 문체는 머뭇거림 없이 독자들을 논쟁 많은 주제 속으로 이끌고 들어간다.
스페인 프로축구팀 레알마드리드 팬인 주인공은 FC 바르셀로나 팬인 인아와 축구를 계기로 가까워진다. 인아는 결혼 전부터 한 남자만 사랑하기를 원치 않았고, 두 사람은 ‘누구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상대를 놓아 주는 것’을 전제로 결혼한다.
결혼을 하면 여자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인아는 어느 날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으며 “그와 결혼하고 싶고 당신과도 이혼하고 싶지 않다”고 남편에게 고백한다.
황당한 제안 앞에 분노하면서도 그녀를 놓칠 수 없었던 주인공은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자보처럼 ‘그녀를 완전히 가질 수 없다면 절반이라도 갖겠다’는 심정으로 3자 간의 불편한 관계를 받아들인다.
독자가 처음 가질 느낌은 아마 낯섦과 거부감일 것이다. 하지만 빠르게 전개되는 소설 속 ‘황당한 시추에이션’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도리 없이 자신의 거부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일처다부제가 황당하다면 일부다처제는 황당하지 않은가? 반대로 일부다처제가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면 일처다부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혼제도는 결국 권력의 문제가 아닐까? 아니, 더 나아가 일부일처제는 과연 인간의 본성에 맞는 제도일까?
소설은 어쩌면 사랑의 지속이 불가능한 현재의 결혼제도, 즉 일부일처제에 대한 발랄한 도발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결국 폴리아모리(Polyamory·비독점적 다자연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평등한 인간관계 속에서 독점하지 않는 사랑이 더 멋지지 않으냐고 묻는다.
단 3명의 인물만 등장하지만 논쟁적 주제 덕택에 흡인력이 있다. 주제에 가려 정작 모든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아내의 캐릭터가 장막에 가려진 듯 묘연한 것이 흠.
모든 상황에 절묘하게 빗대어진 축구 이야기는 주제가 던지는 충격의 완화장치이자 해설이다. 예컨대 일처다부제를 받아들이며 주인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잔인한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로서 한마디 하자면, 이게 축구였다면 진작 부정 선수 개입으로 인한 몰수 게임이 선언되었을 것이다. 부정 선수로 인한 몰수 게임의 공식 스코어는 3 대 0.’ 제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