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의 환생…19일 세종문화회관 모스크바 필 내한공연

  • 입력 2006년 3월 8일 03시 05분


《동서 간 냉전의 벽을 허물어뜨린 계기가 됐던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금메달 수로 1위를 차지했던 구 소련은 스포츠뿐 아니라 문화 예술로도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다가왔다. 그 해 동아일보사 초청으로 열린 볼쇼이 발레단과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공연은 이념 장벽에 가려져 있던 러시아 예술의 진수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박력 넘치는 사운드와 야성에 가까운 관악의 울림은 세종문화회관을 입석까지 가득 채운 5000여 명의 청중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소련이 달려온다’는 사설을 통해 광복 후 최초인 소련 예술단 공연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의미를 짚었다.

당시 스물두 살의 나이로 모스크바 필과 협연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40) 씨는 “예술가들이 서방으로 망명할까봐 소련에서는 비밀경찰인 KGB까지 따라와 철저하게 감시하는 살벌한 분위기였다”며 “첫 공연이었던 부산 연주회에서는 테러에 대비해 무대는 물론 객석까지 불을 다 켜놓고 특공대의 삼엄한 경계 속에 연주를 했다”고 회고했다.

○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 18년만의 협연

그 모스크바 필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다시 선다. 19일 오후 7시 반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2002년에 이어 모스크바 필의 4년 만의 내한 공연. 유리 시모노프의 지휘로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서곡’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교향곡 4번’ 등 오로지 러시아가 낳은 대 작곡가 차이콥스키를 위한 무대를 꾸민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18년 전 모스크바 필의 첫 내한공연 당시 무대에 섰던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 씨가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다시 협연하게 돼 관심을 끈다.

양 씨는 1993년에도 모스크바 필의 전용홀인 차이콥스키 홀에서 시벨리우스와 브람스 곡을 협연하고 녹음한 바 있다. 그는 “18년 전 모스크바 필과 완벽한 앙상블을 만들어냈던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고 말했다.

1951년 창단된 모스크바 필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러시아 음악문화의 자존심으로 꼽힌다. 소련 지휘계의 1세대로 불리는 사무엘 사모수드(1951∼1957)와 키릴 콘드라신(1960∼1977) 등 대지휘자의 분골쇄신 덕에 강렬하고도 웅혼한 슬라브 사운드를 빚어내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88 서울 올림픽 때 한국과 인연을 맺은 후 지휘자 키타옌코가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마르크 에름레르가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해 우리의 클래식 팬에게도 친숙하다.

19일 차이콥스키의 곡들만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서는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왼쪽)와 협연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 씨. 동아일보 자료 사진

모스크바 필은 1990년대 소련의 붕괴 후 주요 파트의 수석 연주자들이 미국, 독일, 네덜란드 등 서방세계로 빠져나가는 손실을 봤다. 모스크바 필이 다시 러시아 정상의 교향악단으로 서게 된 것은 1998년 이후 9년째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유리 시모노프 덕분이다. 1968년 로마 산타 체칠리아 지휘 콩쿠르에서 소련인으로는 최초로 우승한 시모노프는 28세에 러시아 최고 오페라극장인 볼쇼이 극장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해 18년간 지휘봉을 잡았다.

○ 공산화 이전 부드러운 음색 감상할 기회

음악 칼럼니스트 유혁준 씨는 “구 소련 당시 므라빈스키나 콘드라신이 해외 연주를 할 때면 야성미 넘치는 폭발적 사운드로 서유럽 청중을 충격에 몰아넣었다”며 “그러나 시모노프는 유럽 지향적인데다 부드러운 음색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의 차이콥스키는 공산화 이전의 아름다운 앙상블을 빚어내던 러시아 오케스트라의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아일보사 주최. 4만∼15만 원. 02-2273-4455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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