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09>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8일 03시 05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후군(後軍) 좌우를 맡을 장수까지 정한 한신이 잠시 숨을 고르는데 갑자기 군막 한구석에서 으르렁거리듯 외쳐 묻는 사람이 있었다.

“대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이 팽(彭)아무개를 빼놓으시는 것이오?”

모든 장수가 놀라 바라보니 양왕으로 가임(假任)된 팽월이었다. 한신이 다른 장수들은 다 쓰면서 자신만 따돌리는 데 성이 났는지 희끗한 턱수염이 뻣뻣이 서 있었다. 한신이 갑자기 껄껄 웃으며 팽월의 말을 받았다.

“내가 양왕(梁王)을 어찌 빼놓겠소? 다만 맡길 일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 미루었을 뿐이오.”

“그게 무엇이오?”

팽월이 그래도 얼른 속이 풀리지 않는지 퉁명스레 물었다. 한신이 웃음기를 거두고 차분히 달래듯 말했다.

“우리 대왕에게 항왕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양왕처럼 유격에 뛰어난 지장(智將)을 한편으로 두신 일일 것이오. 초군의 양도(糧道)를 끊어 항왕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소용없게 만든 양왕이 아니었더라면 한군이 어떻게 광무산에서의 역전을 이루어 낼 수 있었겠소? 이번에도 양왕께서는 본부(本部) 인마를 이끌고 유군(遊軍)이 되시어 이 싸움의 흐름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주시오.”

“넓디넓은 벌판에서 수십만의 대군이 진세를 벌이고 맞부딪치는데 5만이나 되는 유군을 어떻게 쓴다는 것이오?”

팽월이 조금 수그러든 말투로 그렇게 물었다. 한신이 다시 목소리를 대장군의 군령으로 바꾸어 말했다.

“양왕께서는 높은 곳에서 싸움터를 내려 보시다가, 우리 편이 몰리는 곳이 있으면 그곳을 구하고, 적군의 집중이 지나치면 그곳을 들이쳐 흩어버리시오. 특히 종리매와 계포가 이끄는 초군을 눈여겨보시다가, 그들이 패왕의 본진과 갈라지면 곧바로 그 틈을 치고 들어 두 번 다시는 패왕의 본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해야 하오. 이는 싸움의 흐름을 잘 살피고, 승패의 기미에 밝은 지장(智將)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오. 이번 싸움이 이대로 마지막 싸움이 되느냐, 한나라가 항우를 잡기 위해 다시 수고롭게 대군을 일으켜야 하느냐는 양왕께서 하시기에 달렸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외다.”

평생을 치고 빠지는 싸움으로 늙어 온 팽월이 그런 한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삼가 대장군의 군령을 받들겠습니다.”

완연히 풀린 얼굴로 그렇게 한신의 말을 받으며 머리까지 가볍게 수그렸다.

팽월을 마지막으로 대장군 한신의 군령이 다하자 장수들은 각기 이끄는 장졸들을 데리고 받은 군령대로 진세를 벌였다. 삼군(三軍) 사이를 그리 넓게 벌리지 않아도 30만 대군을 모두 펼쳐놓고 보니 해하 서북의 벌판은 한군의 깃발로 온통 시뻘겋게 뒤덮였다.

그와 같은 한군에 맞선 초군의 진세도 만만치 않았다. 그새 패왕 항우의 군사적 자부심과 자신감이 옮은 것일까, 초나라 사람 특유의 열광과 투지를 되살린 초군의 기세는 세 곱절이 넘는 한군을 눈앞에 두고도 움츠러들 줄 몰랐다. 패왕은 아직도 살아 있는 전신(戰神)이었으며 그들 자신은 모두가 한 번도 싸움에 진 적이 없는 강동(江東)의 용사들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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