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도 웃은 시상식 말말말

  • 입력 2006년 3월 8일 03시 05분


5일 밤(현지 시간) 미국 할리우드에서 열린 78회 아카데미 시상식. 많은 시청자의 눈길은 여우주연상을 받은 리즈 위더스푼이나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동양계 감독상 수상자인 리안(李安) 감독에게 쏠렸지만, 기자의 눈과 귀는 사회자인 존 스튜어트(44)에게 가 있었다.

그는 심야 케이블방송에서 ‘데일리 쇼’라는 가짜 뉴스를 진행하며 주가를 높여 온 코미디언.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그의 단골 풍자 대상이다. 더구나 이날을 위해 코미디 작가단과 5개월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져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민주당에 정치 헌금을 안 내고도 유명 영화인을 실컷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잖아요…. 여기 모인 배우들, 승자에게 투표해 본 게 오늘이 처음 아닌가요.” 그는 초장부터 참석자들에게 야유를 던지며 분위기를 잡았다. 할리우드 배우들은 민주당 성향. 민주당이 두 번이나 선거에서 졌다는 걸 빗댄 것이다.

공화당 꼬집기도 있었다. “한 여배우가 멋진 드레스를 입지 않고 온 것은 (2월에 총기 오발 사고를 낸) 딕 체니 부통령이 드레스를 총으로 쐈기 때문”이라거나 “오늘 (강성 보수 성향의 영화배우) 찰턴 헤스턴이 안 보이네” 등.

뜨겁게 달궈지던 식장 분위기는 그의 한마디 때문에 썰렁해지기도 했다.

“할리우드가 미국의 주류와 겉돈다(out of touch)고 하잖아요. 무신론에 빠져 탐욕과 쾌락의 잔치가 넘치고, (동성애가 퍼져 있던) 소돔과 고모라를 만들고….”

갑작스러운 ‘영화계 비판’ 때문인지 객석 여기저기에서 밭은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한 발 더 나가 “이 말, 농담 아니에요”라고 못 박았다.

잠시 후 ‘할리우드 진보파의 자존심’으로 떠오른 조지 클루니가 남우조연상을 받은 뒤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할리우드가 겉돈다는 게 자랑스럽다. 예전에는 극장 출입도 할 수 없던 흑인에게 여우조연상을 준 것도 할리우드고, 에이즈(AIDS)의 심각성을 환기시킨 곳도 여기”라고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언제부턴가 살얼음판이 돼 버렸다. 2003년에는 사회를 본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부시 대통령,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 소리쳤고, 지난해엔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시상식은) 바보 같은 패션쇼”라고 험담을 퍼부었다.

내년엔 또 어떤 사회자가 나와 미국의 내일을 풍자할지 궁금해진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