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하철1호선’ 29일 3000회…여전히 북적

  • 입력 2006년 3월 8일 03시 16분


홍진환 기자
홍진환 기자
뮤지컬 ‘지하철 1호선’ 29일 마침내 공연 통산 3000회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가 연출한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처음 선보인 이후 12년째 ‘장기 운행’ 중인 국내 최장기 공연 뮤지컬.

6일 밤 서울 대학로의 학전 사무실에서 만난 김민기 대표는 축하 인사에 “축하는 무슨…” 하며 멋쩍은 듯 피식 웃었다.

“1000회 때(2000년 2월) 원작자인 독일의 폴커 루트비히가 내한하여 ‘2000회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런 말은 저주’라고 답했는데, 2000회 때(2003년 11월)도 오더니 또 ‘3000회까지 하길 바란다’고 하더군요. 그때도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어느덧 3000회가 돼버렸네요.”

그런 식으로 4000, 5000회도 맞지 않을까? 그는 담담하게 “관객이 드는 한 공연은 계속하겠지만, 이 작품은 이미 누린 것만도 과분하다. 더 욕심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60만 명 가까운 승객(관객)이 거쳐 간 ‘지하철 1호선’은 요즘도 북적댄다. 너나없이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대학로에서 유료 관객 비율 80∼85%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전-현직 승무원”
‘지하철 1호선’ 3000회 특별 공연을 위해 6일 서울 대학로 학전 그린 소극장에 모여든 역대 출연 배우들. 1994년 초연 배우부터 현재 공연 중인 배우까지 70여 명이 모였다.

잘 알려졌듯, 이 작품은 독일의 동명 뮤지컬이 원작인 번안 뮤지컬이다. 하지만 동독 소녀가 로커와 사랑에 빠져 베를린으로 오는 원작이 옌볜 처녀가 하룻밤 사랑으로 잉태한 아이 아버지를 찾아 서울로 온다는 뼈대만 같을 뿐 완전히 우리 것으로 풀어냈다.

‘지하철 1호선’에는 포장마차 단속반, 윤락 여성, 노숙자, 미군 아버지를 둔 혼혈인, 강남 사모님, 외국인 노동자, 지하철 잡상인, 실직자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11명의 배우가 빚어내는 80여 명의 캐릭터를 통해 1990년대 말 서울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이제 1200회 공연을 넘긴 독일 원작보다 한국의 ‘지하철 1호선’이 더 ‘잘 달린다’. 원작자는 1000회 돌파 후 ‘해외에서 가장 오래 공연 중인 독일 작품’을 위해 ‘로열티 면제’라는 큰 선물을 줬다.

김민기 씨는 ‘지하철 1호선’을 하면서 가장 기뻤던 때로 평균 객석점유율 104%를 기록했던 1996년을 꼽았다.

“처음으로 배우들이 저보다 월급을 더 많이 타 갔어요. 당시 제 월급이 200만 원이었는데 (설)경구가 250만 원을 가져갔거든요. 10년 전 대학로에서는 엄청난 거액이죠. 내가 꿈꿨던 것을 이룬 것 같아 얼마나 기뻤던지….”

3000회 ‘장기 운행’의 비결은?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힘들고 어둡죠. ‘민중 대 착취 그룹의 대립’이라는 잣대에서 본다면 흔히 이들은 ‘적’(착취계급)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요. 민초는 건강하고 낙천적이에요. 왜냐면,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증오보다는 희망의 힘이 더 강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실향민 출신 ‘곰보할매’가 1막 후반부에서 ‘산다는 게 참 좋구나, 아가야’를 부르는 장면이 사실상 이 작품의 정점이라고 본다. 희망으로 가득한 이 곡은 ‘아침이슬’의 가수로서 한때 저항의 상징이었던 그가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일지도 모르겠다.

“…말귀를 알아먹을 수 있을 때까지/움직일 수 있고/기대어 설 수만 있다면/마지막 가쁜 숨 몰아 쉴 그 순간까지/기래도 살아 있다는 건/정말 U은 거이디/아, 안 그러네? 이 사람들아∼.”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1호선 타고 스타 됐어요”▼

12년간 ‘지하철 1호선’이 ‘운행’되는 동안 작품을 거친 배우는 145명.

2002년 연중 상시 공연을 시작한 후로는 6개월마다 출연 배우 11명을 교체하고 있다. 더블 캐스팅을 하지 않아 체력적으로 6개월 이상 버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하철 1호선’은 ‘스타산실’로 꼽힌다. 설경구를 비롯해 황정민 조승우 장현성 방은진 오지혜 임형준 등 영화와 TV에서 활동 중인 스타들이 이 작품을 거쳐 갔다. 배해선 이영미 서범석 서지영 등 뮤지컬 스타도 다수.

이유가 뭘까? 배해선 씨는 “‘지하철 1호선’은 뮤지컬 배우들이 기량을 닦는 데는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소극장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연주를 했는데 반주 소리를 뚫고 관객에게 노래를 전달하는 것이 좋은 훈련이 됐어요. 지금도 뮤지컬 배우로서의 ‘초심’이 흔들릴 때면 혼자 ‘지하철 1호선’을 보러 가곤 해요.”

이 작품은 대학로를 떠나 영화계에서 활동 중인 스타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내 20대를 온전히 바친, 친정처럼 포근한 작품”(장현성), “한국말을 어떻게 제대로 해야 하는지,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관객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작품”(황정민), “내 연기의 핵심이자 바탕”(방은진)이라고 ‘지하철의 스타’들은 말한다.

김민기 대표는 “3차 오디션을 거쳐 배우를 뽑는데 1차는 노래 실력만 보고, 2차는 우리말 구사실력을, 마지막 3차는 키와 외모 등 다른 배우와의 앙상블을 본다”고 밝혔다.

극단 학전은 28∼30일 이 작품을 거쳐간 스타들이 카메오로 출연하는 ‘지하철 1호선 3000회 특별 공연’을 마련한다. 02-763-8233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숫자로 보는 ‘지하철 1호선’▼

1 단일 극단 단일 연출

2 ‘지하철 1호선’이 장기 공연된 극장(학전 블루, 학전 그린) 수

3 3명의 최다 출연자. 남자 최다 이황의(1322회), 여자 최다 이주원(856회), 밴드 최다 이인권(1251회)

9 홍콩 등 ‘지하철 1호선’이 해외 공연한 도시 수

10 ‘지하철 1호선’을 구성하는 장 수. 총 2막 10장

11 출연 배우 수

38 공연에 필요한 스태프 수

83 11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 수

150 ‘지하철 1호선’의 공연시간(분)

181 현재 공연 중인 ‘학전 그린’의 객석 수

1444 지금까지 제작된 의상 수

1994 초연 연도

552000000 출연진이 지금까지 먹은 밥값 총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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