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어머니의 기도와 두 추기경

  • 입력 2006년 3월 9일 02시 59분


성직자가 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성직자의 길을 가는 자식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어머니는 더욱 고통스럽다. 자식이 자기 곁을 떠나 절대자의 품으로 갔을지라도 어머니는 결코 그를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어머니들의 그런 지칠 줄 모르는 기도가 있기에 자식들은 그 고통스럽고 험난한 성직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충북 음성 꽃동네 양지바른 언덕에 한 여인의 소박한 묘지가 있다.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정신적 지도자로 떠오른 정진석 추기경의 어머니 이복순(1996년 작고) 여사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유일한 혈육인 외아들이 임지를 돌아다니는 동안 어머니는 홀로 가난한 이들을 돌봤고, 아들이 그리울 때면 머리맡의 아들 사진을 보며 무언의 대화로 그리움을 삭였다고 한다. 아들이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이상 세속의 인정에 끌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어머니의 이런 헌신과 기도가 한국 천주교회 두 번째 추기경 탄생이라는 경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정 추기경은 서임 후 아직 모친의 묘소를 참배하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더욱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다.

정 추기경이 1970년 주교서품을 받을 당시 주교관을 쓰고 지팡이를 든 아들의 얼굴이 잉태 당시 태몽에 등장한 아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 “감사 감사 감사” 세 마디를 하고 혼절해버렸다는 보도는 신앙의 위대한 신비를 느끼게 한다. 돌아가시기 1년 전 “아들 주교가 추기경이 될 거야”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단순히 육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정 추기경의 탄생을 위해 오래전에 예비된 예언자로 여겨질 정도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선지자(先知者)의 사명을 감당한 김수환 추기경 또한 어머니 서중하(1955년 작고) 여사의 권면과 기도가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당신 이름 석 자와 하늘 천(天), 따 지(地) 정도밖에 몰랐던 어머니는 평생 옹기와 포목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니면서 아들 둘을 성직자로 만들었다. 김 추기경이 그 험난했던 시절 독재 정권에 맞서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것도 어머님의 강인함을 이어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 추기경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무릎에 기대어 눈을 감으신 어머니를 회고하며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시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다 받아 주시고, 어떤 허물과 용서도 다 덮어 주셨다”고 말했다. 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말이 ‘사랑’이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어머니가 보여 준 사랑처럼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믿고 바라고 견디어 내는’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인 김 추기경이지만 사랑에 관한 한 가난하고 못 배운 어머니에 미치지 못했다는 고백인 것이다.

서구 교회에도 위대한 신앙의 어머니에 관한 얘기가 많다. 당대의 지식인이었으나 젊은 시절 방탕과 이단(異端)에 빠졌던 아우구스티누스(354∼430)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어린 기도로 회심(回心)해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로 거듭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저 ‘고백록’은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1703∼1791)의 어머니 수재너는 모두 열아홉 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도 저녁마다 일일이 자녀를 하나씩 불러 정성스레 성경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런 사례를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를 둔 자녀는 결코 그릇된 길을 가는 법이 없다”고 믿는다.

37년 만에 한국에서 또 한 분의 추기경이 탄생한 것을 계기로 오늘도 어디선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를 생각해 보게 된다. 자녀들에게는 물질보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원이 더 큰 울림을 낳는다. 지상(地上)에서건 천상(天上)에서건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는 결코 마르지 않는다.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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