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중도성향 두 학술지 ‘현대사’ 지상격돌

  • 입력 2006년 3월 9일 02시 59분


한국현대사의 명암(明暗)을 둘러싸고 대조적 시각을 지닌 두 진영의 학자들이 거의 동시에 자신들의 주장을 집대성해 펴냈다.

▽“뒤틀린 역사”=참여사회연구소가 펴내는 진보성향의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는 ‘해방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는 주제로 21명의 학자들을 동원했다. 최장집(崔章集·고려대) 이병천(李炳天·강원대) 정해구(丁海龜·성공회대) 조희연(성공회대) 홍윤기(洪潤基·동국대) 김동춘(金東椿·성공회대) 정용욱(鄭容郁·서울대) 교수 등 진보학계의 주류로 떠오른 학자들이 대거 필자로 나섰다. 이들은 한국현대사를 ‘뒤틀린 건국의 기억, 부국의 추억, 강국의 소망’으로 요약하면서 “대한민국은 잘했던 것보다 못했던 것, 아니 안 하고 넘어왔던 것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는 수정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이른바 진보파의 역사관에 대해 중도 및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대한 비판서를 표방하고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대중적 관심이 쏠린 데 대한 반격의 성격이 강하다.

정용욱 교수는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 남북협상파의 노선이 비현실적이었다는 비판이 최근 대두되고 있는 데 대해 “탈냉전 이후 계속되던 한반도 위기상황을 평화와 통일의 무드로 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6·15남북공동선언은 백범 김구가 남북협상 당시 걸었던 길의 재현에 가깝다”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잘못 끼워진 단추가 이제야 제대로 끼워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장집 교수는 “해방의 최대 정치적 가치를 반제독립운동이라고 했을 때 북한은 남한에 비해 정당성에 있어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나 전체주의적 사회정치체제였다”며 “반면 남한은 타율적으로 외부로부터 만들어진 측면이 더 큰 매우 불안정한 조건에서 출발했으나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의 잠재력과 공간을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자랑할 만한 역사”=중도성향의 역사전문 반년간지 ‘한국사 시민강좌’는 ‘대한민국 건국사의 새로운 이해’라는 기획특집을 통해 ‘대한민국의 탄생을 잘못 끼워진 단추이며 이후의 역사는 오욕과 실패의 역사’로 바라보는 수정주의 사관의 시각을 비판하는 글을 모았다. 이정식(李庭植·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유영익(柳永益·연세대) 한용원(韓鎔源·한국교원대) 황수익(黃秀益·서울대) 양동안(梁東安·한국학중앙연구원) 차상철(車相哲·충남대) 교수 등 8명이 필자로 나섰다.

이정식 교수는 “이승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지나쳐 대한민국 건국의 정체성까지 폄훼돼서는 안 된다”며 특히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수립론을 정권욕에서 비롯된 발상이었다고 단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 교수는 “한반도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는 강대국들의 대립은 날로 악화되고 있었고,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합의해도 분단이 해소될 수 없을 것임이 자명했다”고 지적했다.

황수익 교수는 “5·10총선거는 남북분단체제의 기원이 아니라 해방 후 3년 동안 남과 북에 형성된 분단체제의 결과”라며 “5·10선거는 남로당의 폭력적 반대로 모범적 선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 평등 비밀 직접 투표에 의한 국민의 정치참여를 실현한 선거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때 이 선거를 폭력적으로 막으려 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5·10총선거’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영익 교수는 “이승만이 ‘대통령병’ 환자였기 때문에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며 대통령중심제는 1904년 이래 이승만의 평소 신념이었다”며 이후 한국 상황에서 그 효율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이승만의 선견지명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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