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 ‘앙코르’ 마약에 찌든 가수왕 바른생활女 만나다

  • 입력 2006년 3월 9일 03시 01분


“아니, 왜?”

미국 할리우드 여배우 리즈 위더스푼(30). 그녀가 차기작 출연료로 물경 2900만 달러(약 285억 원)를 받아 여배우 중 최고 몸값을 기록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 관객은 이런 반응을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위더스푼은 다르다. 그녀는 ‘일과 가정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똑 소리 나는 여배우’다. 미국인들은 명문 스탠퍼드대 영문학과를 나오고, 미남배우 라이언 필립과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스캔들도 없이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그녀에게서 ‘미국 백인 중산층의 바람직한 여성상’을 읽어낸다.

○ 팝영웅 조니 캐시 삶과 사랑 담아

9일 개봉되는 영화 ‘앙코르(원제 Walk the Line)’는 위더스푼에 대한 이런 한미 간 시각차를 이해하면 한층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여기서도 그녀는 보수적인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이혼 후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마약에 빠진 동료 남자가수와 재혼하면서 수렁에 빠진 그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신실(信實)하고 도덕적인 여가수 ‘준 카터’ 역을 맡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일(현지 시간) 열린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통해 아카데미 회원들은 그녀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김으로써 이런 미국적인 가치와 포개어지는 그녀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높게 산 것이다(심지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래 제목이기도 한 원제 ‘(I) Walk the Line’은 ‘올바르게 살다’란 뜻이다!).

어린 조니 캐시는 집안의 대들보 역할을 하던 형이 사고로 죽자 “쓸모없는 네가 죽었어야 했다”는 아버지의 폭언을 들으며 죄책감 속에 자란다. 마침내 가수로 성공한 조니(호아킨 피닉스). 그는 어릴 적부터 흠모해 온 여가수 준 카터(리즈 위더스푼)와 순회공연을 함께 하면서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표시하지만, 그녀는 애써 음악적 파트너로만 그를 대하려 한다. 마약에 빠져 밑바닥까지 추락한 조니. 그에게 다시 준이 나타난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1960년대 미국 팝계를 좌지우지했던 가수 조니 캐시(1932∼2003)의 삶과 사랑을 담은 영화 ‘앙코르’가 지난해 개봉되었던 영화 ‘레이’와 비교되는 건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다. 두 영화는 모두 미국 대중음악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가수들의 삶을 담은 데다, 어릴 적 형제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갖게 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부터 음악적 세계가 잉태되는 접근방식마저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에 비해 ‘앙코르’의 이야기 전개는 심심해 보일 만큼 평평하다. 가수의 자의식을 영화는 드라마틱하게 과장하지 않으며, 조니 캐시의 인생과 사랑 사이에서 무난한 균형추를 잡는다.

뭔가를 일부러 특별하게 말하려 하지 않겠다는 영화의 이런 태도는 색다른 감동을 기대하는 관객에겐 실망스럽겠지만, 알고 보면 ‘앙코르’의 숨은 장점이기도 하다. 영화는 조니 캐시와 준 카터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나누는 절묘한 노랫말을 통해 그들의 절절한 심정을 전달하면서, 삶이 주는 강박과 노래가 주는 믿음을 최적 비율로 섞는다.

○ 호아킨의 말투-눈빛연기 주목할 만

리즈 위더스푼이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지만, 사실 그녀보다 빛난 건 조니 캐시보다 더 ‘조니 캐시적’이었던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다. 우물거리며 말하는 자폐(自閉)적인 말투와, 피로하고 우울하면서도 내면의 욕망이 억제된 눈빛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케이트 & 레오폴드’ ‘아이덴티티’를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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