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인간의 몸은 ‘자동조절시스템’이 탁월하다. 한두 번 배고픔을 경험하면, 그 다음부터는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려 한다. 이러한 인체 본능을 이용한 것이 마라톤 선수들의 ‘식이요법’이다.
식이요법은 보통 레이스 4, 5일 전에 시작된다. 처음 사나흘(9∼12끼)은 내리 단백질(쇠고기)만 먹다가, 그 이후엔 집중적으로 탄수화물(밥 국수 등)을 섭취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인체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탄수화물을 저장한다. 탄수화물은 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 즉 글리코겐의 원천이다.
식이요법을 성공적으로 마친 마라토너는 30km지점 이후에 강하다. 다른 선수들이 에너지가 바닥나 힘들어할 때, 그는 아직 남은 에너지로 잘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오스트리아 프로축구리그에서 펄펄 나는 ‘날쌘돌이’ 서정원(36·SV리트)도 이러한 식이요법을 활용하고 있다. 마라토너 같은 고강도 식이요법은 아니지만 그 원리는 닮았다.
“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로 고기류를 먹는다. 그리고 (경기가 있는 토요일 전후인)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밥이나 스파게티 등 탄수화물을 섭취한다.”
서정원은 아직도 체력 테스트를 하면 팀내 20대 선수들과 비슷하다. 경기 후반에도 20대들과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철저한 관리 덕분일 것이다.
식이요법은 1980년대 일본 마라톤 선수들이 즐겨 썼다. 이를 ‘한국마라톤의 대부’ 정봉수 코오롱 감독(1935∼2001)이 김완기 황영조 이봉주에게 적용해 성공했다.
하지만 식이요법이 만능은 아니다. 위장이 약한 선수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김이용(33·국민체육관리공단)이 좋은 예다. 김이용은 위장이 유난히 약하다. 하지만 코오롱시절 정 감독이 지켜보는데 감히 “못 하겠다”고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식이요법을 할 때면 선수들의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고기만 내리 9끼쯤 먹다 보면 ‘고무 씹는 기분’이어서 저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이런 판에 김이용은 자신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 싫었다. 결국 그는 식이요법 때마다 먹었던 고기를 토해내기까지 했고, 끝내는 위에 난 혹 제거수술을 받아야 했다. 식이요법도 선수에 따라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식이요법은 일본이나 한국, 스페인 등 유럽의 일부 마라토너들이 요즘도 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마라톤 강자인 아프리카 선수들은 거의 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기록(2시간 4분 55초) 보유자인 케냐의 폴 터갓도 하지 않는다. 레이스 2, 3일 전부터 탄수화물 섭취를 늘리는 정도가 전부다. 자칫 지구력을 늘리려고 식이요법을 하다가 컨디션을 망치면 흑인들의 장기인 스피드도 죽는다는 것이다.
새봄.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마라톤대회가 줄을 잇고 있다. 요즘엔 아마추어 마라토너들도 식이요법을 즐겨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엘리트 선수처럼 ‘고강도 식이요법’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나치면 해롭다. 마스터스는 사나흘 정도 육류를 먹다가 1, 2일 정도 탄수화물 위주로 먹는 게 정답이다. 서정원식으로 말이다. 위장이 약한 마스터스는 굳이 할 필요도 없다.
한국인들은 일단 무슨 이론을 한번 알면 흠뻑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상의 주인은 나다. 내가 부처요, 하늘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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