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아이를 집에서 낳았다고?”

  • 입력 2006년 3월 10일 03시 11분


지난달 27일 낮 12시경 선동우 이연옥 씨 가족이 집에서 갓 태어난 아기 예현이를 보고 있다.
지난달 27일 낮 12시경 선동우 이연옥 씨 가족이 집에서 갓 태어난 아기 예현이를 보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전 11시, 경기 안산시 상록구 일동의 선동우(34) 이연옥(35) 씨 부부의 집은 아기 탄생 준비로 분주하다. 오전 6시부터 시작된 부인 이 씨의 진통은 고비에 다다른 상태. 아들 승혁(8) 군과 딸 다현(6) 양도 곧 태어날 동생 맞이에 설레고 있다. 10년 경력의 간호사 출신인 이 씨는 두 아이를 병원에서 낳았지만 이번에는 조산사의 도움으로 가정 분만을 하려는 참이다.

“임신은 병이 아닌데 병원에 가면 완전히 환자가 되잖아요. 아무 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아기도 금방 데려가 버리고. 이번에는 남편과 아이들과 같이 낳고 싶어요.”

아기가 잘 나오라고 쪼그려 앉아 심호흡을 하는 이 씨 옆에서 가족들은 평화롭게 아기를 기다린다. 아이들은 태어날 동생을 위해 편지를 써 놓았다. 승혁이는 편지에 ‘아기야 안녕? 난 오빠야. 배 속에서 뭐 했니?’라고 썼다. 11시 30분, 어두운 곳에 있다 나오는 아기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어둡게 해 놓은 따뜻한 방 안에 이 씨는 남편에게 기대고 반쯤 누웠다.

11:00 "자 이제 나올 때 다 됐어요." 조산사 아줌마가 엄마의 배를 쓰다듬고 있습니다.

11:20 "후~후~" 엄마는 심호흡을 하고 있네요.

11:36 "엄마, 안마 받고 힘내세요."

11:50 '동생이 무사히 나와야 할 텐데….'

11시 43분, 이 씨는 “이제 별이 보이려고 한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조산사 김옥진(45·김옥진 조산원장) 씨가 “자 길게 힘줘요. 끙!” 하고 산모를 독려한다.

아빠는 조용히 앉아 있는 딸 다현이에게 “너도 이렇게 나왔어”라며 안심시키지만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낮 12시가 되자 한 번도 비명을 지르지 않던 이 씨가 신음 소리를 냈다. 다현이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아기의 새까만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부터 힘 확 주면 안 돼요. 천천히, 옳지.”(김옥진 씨) 6분 뒤 머리가 나왔나 싶더니 분홍빛의 아기는 너무도 부드럽게 스르륵 세상에 나왔다. 예쁜 딸이다. 12시 7분,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배 위에 탯줄을 자르지 않은 채로 눕혀졌다. 엄마의 첫 마디는 “아, 좋아라.”

12:07 엄마의 첫 마디 "아이 좋아라." 동생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무도 아기를 거꾸로 들거나 때리지 않았지만 아기는 스스로 호흡을 시작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탯줄의 박동이 멈춘 뒤 아빠가 탯줄을 잘랐고 아기는 곧 엄마 젖을 빨기 시작했다.

잠시 후, 승혁이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친할머니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왔다. “왜 아(아이)를 집에서 낳았노?”

12:10 "할머니, 집에서 아기 낳았어요."

한국에서는 1년에 약 5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나며 98% 이상이 병원에서 태어난다. 병원 출산의 37.7%(2004년 기준)는 제왕절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가정 분만을 고집하는 1% 안팎의 산모들이 있다. 분만에 관한 한 한국 사회의 ‘소수자’인 이들은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반의 고학력자다.

친척들도 대부분 “제정신이냐”며 차가운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시가나 친정에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들이 ‘출산=병원’의 공식을 깨고 가정 분만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기사에서 가정 분만은 엄마와 아기가 건강하다는 진단 아래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이뤄지는 자연분만을 뜻합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탄생

가정분만의 장점은 산모가 안정된 가운데 출산을 스스로 주도할 수 있다는 것. 한의사 부부인 박영한(37·서울 동작구 상도동) 이명진(29) 씨는 2003년에 아들, 지난해에는 딸을 집에서 낳았다. 이 씨는 “출산에는 산모의 안정이 가장 중요한데 낯선 곳에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가운데 다른 산모의 비명을 들으며 아기를 낳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딸 출산 과정은 케이블 TV 히스토리 채널을 통해 방영됐다.

올해 2월 집에서 아들을 낳은 도서관 사서 한순욱(30·서울 광진구 자양동) 씨는 “계속 누워 있는 게 아니라 앉기도 하고 욕조에 들어가 진통을 가라앉히는 등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한 사람(조산사)이 계속 옆에 있어 줘서 좋았다”며 “남편은 서 있다가 탯줄만 자르는 게 아니라 9시간 동안 계속 마사지를 해주며 함께 아기를 낳았다”고 말했다.

주부 조나영(29·경기 안양시)씨도 1월 집에서 딸을 낳았다. 그는 “충분히 정보를 수집했고 책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을 읽은 뒤 생각해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출산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한 ‘자연주의자’들이라는 점. ‘삼신할매 임산부 출산 교실’을 운영하는 조산사 유영희 씨는 “산모 대부분이 수도권에 사는 회사원 교사 등이며 남편 직업도 방송국 PD, 영화배우까지 다양하다”며 “돈이 없어서 집에서 낳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가정분만 비용은 60만 원 선으로 입원비를 제외하면 자연분만 병원비보다 싸지 않다.

○출산의 주인공은 아기와 엄마

가정 분만은 프랑스 산부인과 의사 프레데리크 르부아예가 저서 ‘폭력없는 탄생’에서 말한 아기 입장에서의 출산 개념과 비슷하다. 르부아예는 “탯줄을 늦게 잘라 폐호흡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면 아기가 스스로 우는데도 아기를 거꾸로 들고 때리는 것은 폭력이다. 아기는 태어난 직후 엄마에게 안겨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르부아예 분만을 시행하는 산부인과도 많다.

분만에 의료 처치가 남용된다는 걱정도 가정 분만을 택하는 이유 중 하나. 초등학교 교사로 지난해 9월 집에서 출산한 문명숙(30·서울 중랑구 면목동) 씨는 “여자가 아이를 갖고 낳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아기도 스스로 나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정상적인 경우라면 제왕절개는 물론 자연분만에서도 분만촉진제 등 약물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정분만시에는 필요한 경우에만 약물투여나 회음부절개를 한다.

일부 산부인과에서 산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는 내진(질에 손가락을 넣어 자궁경부가 벌어진 정도를 확인하는 일)이 대표적. 2년 전 대학 병원에서 딸을 낳은 주부 박혜윤(31·서울 강남구 개포동) 씨는 “간호사 레지던트 등 이 사람 저 사람이 와서 조심성 없이 내진을 하니 실험 동물이 된 듯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40여 년간 자연분만율 96%를 기록한 프랑스 산부인과 의사 미셸 오당은 저서 ‘농부와 산과의사’에서 “땅의 본성을 무시하고 화학비료로 농사를 지어 온 이들이 유기농 식품에 관심을 돌리는 것처럼 제왕절개와 약물 투여, 회음부 절개 등으로 표준화 산업화된 출산에 대해서도 반성이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출산은 가정이나 가정처럼 꾸민 병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출산에 기계의 개입이 많을수록 아이는 성장하면서 폭력성을 띨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병원 조산원 가정의 네트워크

가정 분만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들은 회의적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마리산부인과 홍순기 원장은 “의사들 사이에서도 병원 분만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와 반성이 있었고 지금은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며 “응급 상황을 감안하면 가정 분만은 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산모와 아기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가도 갑자기 병원으로 옮겨야 할 응급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가정 분만을 도와줄 조산사를 찾기도 힘들다. 조산사는 간호사 면허증을 가진 이가 일정 교육을 거쳐 국가시험에 합격하면 면허를 받으며 산부인과에도 있다. 대한조산협회에 따르면 전국에서 조산원은 80여 곳으로 추정되나 서울에는 2곳뿐이다. 병원 대신 조산원 분만을 택하는 산모도 많아 일부 조산원은 붐비기도 한다. 지난해 6월 뉴질랜드에서 가정분만한 영어 교사 출신 전세영(35) 씨는 “뉴질랜드는 정부가 조산사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조산사는 병원 예약 등 출산에 관한 전부를 돌봐 준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연세필 산부인과 김석중 원장은 “의사가 봐 주는 시간은 진통 시간의 10%도 안 되기 때문에 병원 분만 때도 조산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병원 바로 옆에 조산원이 있고 병원과 연계해 가정분만도 해 준다면 이상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엄마와 아기가 모두 건강해 순산 가능성이 높을때만 가능하다.

글=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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