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브랜드-세상을 파고든 유혹의 기술

  • 입력 2006년 3월 1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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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세상을 파고든 유혹의 기술/월리 올린스 지음·박미영 옮김/262쪽·1만3500원·세미콜론

한때 ‘브랜드’는 죄악이었다. 나이키를 신고 리바이스를 입는 것은 비애국적 행위였고, 빈부 격차를 조장하는 반사회적 행위처럼 비난받았다. 고가 브랜드를 통해 ‘난 뭔가 달라’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은 ‘대나무숲’에서만 발산해야 할 금기였다.

시간이 흘러 카르티에 시계와 루이비통 핸드백, 버버리 코트 같은 고가 브랜드들이 ‘명품’으로 불리는 시대가 됐지만 이를 욕망하는 것은 여전히 천박한 속물 근성으로 비난받는다. ‘실속 없이 허명에만 사로잡힌 상업주의의 포로!’

최근 브랜드의 가치를 강조하는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다들 경제논리에 투철하다. 그러나 시장의 논리만으로는 브랜드에 대한 한국사회의 오래된 죄의식을 씻어 내지 못한다. 죄의식의 치유를 위해서는 교회나 심리상담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 브랜드 컨설턴트업체 월프 올린스의 공동 창업자였던 저자는 브랜드 업계의 프로이트 또는 칼뱅이라 할 만하다.

그는 억압받던 성적 욕망을 일반화했던 프로이트처럼, 그리고 부도덕했던 재산 축적을 ‘신의 축복’으로 전환시킨 칼뱅처럼 현대인의 브랜드 추종에 대한 죄의식을 씻어 준다.

저자는 “브랜드가 옛날에는 제품 일관성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세상에 내가 누구인지를 좀 더 빠르고 확실하게 알릴 수 있는 암시”라고 말한다. 브랜드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세상살이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명확하고 신속하게, 그리고 지속적인 정체성을 규정짓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 브랜드는 종교를 대신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브랜드가 낭비와 불평등을 야기하는 자본주의 모순의 극치라는 비판에 대해 저자는 “그런 비판은 상업적 브랜드에 국한했을 때만 해당된다”고 답한다.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WWF), 적십자, 그린피스는 물론 최근의 국가 브랜드까지 비상업적 목적의 브랜드의 긍정적 효과를 망각한 비판이란 것이다.

저자는 브랜드를 비판하는 ‘노 로고(No Logo)’ 운동은 “고객, 즉 우리 자신을 수동적 존재로 전락하게 한다”며 브랜드의 성패는 기업의 속임수가 아니라 바로 고객들의 주체적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풍부한 사례로 입증한다.

브랜드는 고객의 마음과 지갑을 여는 유혹의 기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유혹의 기술이 예술 환경 공공 분야로 전파되면서 거두고 있는 눈부신 성과에 비춰 봤을 때 브랜드야말로 상업주의가 인류 문화에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라는 저자의 통찰은 충분히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원제 ‘On Brand’(2003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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