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13>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13일 03시 0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패왕이 한신의 전군(前軍)을 쪼개고 열어놓은 길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온 종리매와 계포의 군사들은 전군 가운데쯤에 이르자 각기 좌우로 방향을 바꾸었다. 패왕 때문에 좌우 두 쪽으로 나누어진 한군을 다시 앞뒤로 갈라내 네 토막을 내놓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다시 기세 좋게 한군을 앞뒤로 갈라 가는데, 한나라 전군 좌우에 진세를 벌이고 있던 한신의 부장 공희(孔熙)와 진하(陳賀)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종리매와 계포의 기세에 은근히 내몰리고 있던 한군이 반갑게 길을 열어 공희와 진하의 구원을 받아들였다. 그 두 장수가 각기 3만을 이끌고 좌우에서 함성을 지르며 들이닥치자 오히려 움찔한 것은 종리매와 계포의 군사들이었다. 무인지경 가듯 마음 놓고 내닫다가 만나게 된 적의 원병이라 그런지, 그 군세가 실제보다 몇 배나 크게 느껴졌다.

서로 정해 놓은 방향이 있어 종리매가 이끄는 초군은 공희가 이끌고 온 한나라 전군 좌익(左翼)과 뒤엉키고, 계포는 진하가 이끌고 달려온 한나라 전군 우익(右翼)과 맞붙었다. 이끌고 있는 군사는 양편이 비슷했으나 기세는 처음부터 갑자기 공세에서 수세로 바뀌게 된 초군 쪽이 밀렸다. 거기다가 자기들이 싸우고 있는 곳이 한군의 진세 안이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면서 초군의 열세는 더욱 뚜렷해졌다.

그와 같은 형세의 역전은 한신이 어렵게 버티고 있는 전군 본진 쪽에서도 일어났다.

패왕의 등 뒤를 밀어주던 종리매와 계포가 각기 좌우로 길을 달리 잡자 한신의 본진을 쪼개려 드는 패왕의 압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워낙 무섭게 치고 들던 기세가 있어 한신이 안간힘을 다해 버텨도 패왕은 점점 더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그러다가 이대로 가면 한나라 전군이 둘로 쪼개지고 마는 게 아닌가 싶을 때, 홀연 한신의 등 뒤에서 들려온 외침이 있었다.

“대장군, 우리가 왔습니다. 항우는 우리에게 맡기십시오.”

한신이 반갑게 돌아보니 한왕이 있는 중군 전부(前部)를 맡고 있던 번쾌와 역상이었다. 한신이 짐짓 놀란 척 물었다.

“그대들은 대왕이 계신 중군(中軍)의 방패와 갑주다. 대왕의 어가(御駕)는 어찌하고 이렇게 왔는가?”

“대왕의 명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대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전군이 없으면 중군도 없다 하였습니다.”

입을 모아 그렇게 대답한 두 사람은 이끌고 온 군사를 휘몰아 패왕과 마주쳐 갔다. 그러자 줄곧 밀리기만 하던 전군 장졸들도 스스로를 북돋우는 함성과 함께 되돌아서 패왕의 군사들과 맞섰다.

번쾌와 역상이 함께 패왕의 철극을 받아 내며 길을 막아서자 비로소 패왕의 전진은 멈춰지고 한동안 우열을 분간할 수 없는 혼전이 벌어졌다. 패왕이 성난 범처럼 길길이 뛰며 눈부신 무용을 펼쳤으나, 거기까지 오는 동안의 대쪽을 쪼개는 듯한 기세는 끝내 되살려 내지 못했다. 번쾌와 역상이 분전하는 동안 전의를 가다듬고 몰려온 한나라 장수들이 수레바퀴 돌 듯 돌아가며 싸워 패왕을 한곳에 묶어 두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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