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 사는 20대 여성 키티 제노비스는 이날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다 정신이상자에게 난데없는 칼부림을 당했다. 35분간이나 계속된 살인 현장을 자기 집 창가에서 지켜본 사람은 모두 38명. 그러나 이들 중 단 한 명도 나서서 말리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누군가 수화기를 들기만 했어도 제노비스는 목숨을 구했을지 모른다. 신고자가 위험해질 가능성도 전혀 없다. 그런데 왜?
방관자들의 기이한 행동이 뉴욕타임스를 통해 알려지면서 온 나라가 들썩였고 존 달리 등 두 명의 심리학자는 그 같은 행동을 분석하기 위한 실험에 착수했다. 대학생들을 격리된 방에 한 사람씩 들어가게 한 뒤 오디오 장치로 옆방에 있는 학생과 대화를 나누게 했다. 대화 도중에 학생으로 위장한 한 배우가 갑자기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위장했다. 누구라도 일어나 복도의 연구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실험 결과 학생들은 자신 말고 도와줄 학생이 네 명 더 있다고 믿었을 때 아무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반면 자신과 간질 환자 둘만 있다고 믿었을 땐 85%가 도움을 요청했다.
이는 집단 규모가 클수록 사람들이 대담해진다는 통념과는 다른 것이다. 오히려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돼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적어져 행동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제노비스 신드롬’ 혹은 ‘방관자 효과’로 불린다.
방관한다고 냉담한 것은 아니었다. 간질 발작 실험에서 가만히 있었던 학생들도 비명을 듣는 내내 대응을 할 것인가 여부로 괴로워했다. 당황하고 갈팡질팡하다 결국 ‘나 말고 누군가가 돕겠지’ 하는 자기합리화의 끈을 부여잡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허약한 본성에 실망하기엔 이르다. 1979년 몬태나대의 아서 비먼 교수는 대학생들을 모아 간질 발작 실험 필름을 보여 준 뒤 남을 돕는 행위의 필요성을 교육했다. 그 결과 넘어진 여성이나 간질 발작 환자를 만났을 때 필름을 본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2배 이상의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과 사람의 마음속은 미스터리로 가득하지만, ‘배울 수 있는 능력’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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