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살아 움트는 이 봄철에, 겨울잠에서 우리를 깨우는 큰스님의 잔잔한 음성이 들려온다. 고독의 수행과 깊은 침묵으로부터 샘물처럼 솟아나는 맑은 소리이다. 여물지 않은 말과 메아리 없는 소음으로 가득 차 갈수록 어지러운 오늘의 메마른 땅을 적시는 봄비같이 귀하고 반가운 말씀이다.
언제는 말이 모자라 삶이 흐트러지고 세상이 안 돌아갔던가. 우리가 스님의 말씀에서 남다른 진실성과 생명력을 느끼는 것은 벌거벗고 살아낸 삶으로 체득한 바를 그대로 꾸밈없이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더없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렇듯 값진 소식을 들었으면, 그 울림으로 이제 저마다 마음을 열고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속 얼굴을 들여다볼 차례다. 그렇게 해서 저마다 진정 '삶다운 삶'의 길을 '지금 여기'서부터 찾아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스님 말씀대로 오늘 우리는 너나없이 '풍요로운 감옥'을 알게 모르게 지향하며 그 안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닐까.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을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자는 뜻이다. '가치 있는 삶이란 욕망을 채우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내 눈을 감겼는가. 사물을 내 스스로 보지 못하고 남의 눈으로 보아온 그릇된 버릇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스님은 일깨운다. 그렇지 못하면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비본질적인 헛삶으로 빠져들고 만다. 참과 거짓을 올바로 알아차릴 수 없이 마음이 흐려진 세태일수록 더욱 그렇지 않을까.
그 누구도, 하느님도 부처님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 수는 없다. 그렇기에 생활 현장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놓여 있을수록 자신을 더욱 투철히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홀로 눈뜨는 지혜 없이는 더불어 살며 나누는 자비의 길도 열리지 않는다고 스님은 가르친다. 이 얼마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 하나하나에게, 그리고 온 나라로서도, 절절히 요긴한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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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과는 꽤 여러 해 전에 선연(善緣)을 맺는 복이 내게 주어졌다. 이번 잠언집 안에 "만난다는 것은 곧 눈뜸을 의미한다"는 한 마디가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다. 자주 상봉은 못해도 늘 마음으로는 나란히 길을 가는 선지식(善知識)으로 가까이 모시고 있다.
어느 어른이 써주신 귀한 글귀가 떠오른다. '일심상조 불언중(一心相照 不言中)'.
장익(張益) 가톨릭 춘천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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