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떠오르는 투자 대안으로 미술품을 주목한 ‘아트 펀드’를 조명하는 콘퍼런스가 열린 데 이어 최근엔 서울의 박영덕화랑을 비롯한 11개 화랑이 공동으로 주식회사 한국미술투자를 설립했다. 경매 분야의 움직임은 더 활발하다. 1998년 신설된 서울옥션과 지난해 11월 오픈한 K옥션 등 서울에 있는 경매 회사의 뒤를 이어 지방에서도 경매사가 문을 연다. 부산의 코리아아트 갤러리는 11월 말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신축될 아트센터 안에 옥션하우스를 열 예정이다. 부산의 조현화랑도 연내에 경매사 설립에 참여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아트 펀드의 조성 논의든, 경매사의 신설 소식이든 모두 오랜 침체를 딛고 미술시장이 잠에서 깨어나는 반가운 조짐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과열에 대한 우려도 없진 않다. 아트 펀드의 경우 연초에 내한한 영국 ‘파인 아트 펀드’의 최고경영자(CEO) 필립 호프먼 씨는 미술품 투자의 매력과 위험을 동시에 강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 펀드의 매력이지만 다른 펀드와 달리 아트 펀드는 이해하기 어렵고 운영이 복잡하다는 것. 따라서 미술 시장이 제대로 형성됐는지, 최고의 전문 인력을 충분히 확보했는지 등에 대한 사전 검토나 치밀한 준비 없이 섣불리 시작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조언이었다.
미술시장에서 경매의 약진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지난달 23일 서울옥션 100회 경매는 하루 총거래액이 97억여 원에 이를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미술품 거래의 투명화에 기여했다는 경매의 순기능에 대한 평가도 있지만, 대형 화랑이 주주로 참여한 두 경매회사를 바라보는 작은 화랑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화랑을 통하는 1차 시장과 경매를 통하는 2차 시장은 구분돼야 한다. 그런데 국내에선 경매와 화랑이 얽혀 있어 ‘특정 작가 키우기’ 등의 여지가 있으며, 각기 자기 영역에서 활동하며 공생한다는 게임의 룰을 깨뜨리고 있다는 불만이다.
어쨌거나 경제 규모와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아트 펀드의 등장과 경매의 활성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다. 그 길목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미술이란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요즘은 투자자만 있고 컬렉터가 없다’는 한 화랑 주인의 걱정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미술작품은 작가의 혼이 담긴 그릇이다. 미술을 투자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심과 더불어 아끼고 사랑하며 즐기는 대상으로서의 관심도 높아지길 기대해 본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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