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씨 장편소설 ‘17세’… 집나간 딸과의 e메일 대화

  • 입력 2006년 3월 16일 03시 05분


체험은 힘이 세다. 몸으로 부대낀 이야기는 현란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읽는 맛이 있다. 2006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17세’가 그렇다.

소설은 가출한 열일곱 살 딸에게 보내는 e메일 형식으로 전개된다. 엄마도 딸과 같은 나이에 집을 나갔던 것. 엄마 무경은 e메일을 통해 딸 다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혼 뒤 생계를 잇는데 바빠 서먹했던 딸 다혜와 늦게나마 화해하기 위해서다.

공부를 잘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무경. 불끈하는 마음에 집을 나와 버렸다. 배움이 아닌 방향으로 운이 흐르려고 그랬는지, 가출한 무경은 취직 준비하던 동창을 만나 함께 회사에 들어간다.

이근미 씨

소설은 열일곱 살 무경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 이야기다. 배를 주리거나 사랑에 온몸을 던지거나 하는 처절하고 절박한 얘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1970년대 섬유회사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의 희로애락이 펼쳐진다. 스물한 살에 엉겁결에 ‘사고 쳐서’ 결혼했지만 마음은 사무실 여직원 황 양에게 가 있는 강우,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대졸 사원에게 자리를 빼앗긴 정 계장, 대학생에 대한 선망을 숨기지 않는 중졸 학력이 전부인 성희, 밝고 낙천적이었지만 공장에서 작업하다 오른팔을 잃고 큰 고통에 빠진 차현 등 소설 속 등장인물 저마다 사연이 있다. 작가는 이렇게 다채로운 삶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팍팍했던 시대가 배경이지만 소설 속 어느 누구도 악하지 않다. 무경의 체험은 작가 이근미(48) 씨가 겪은 것 그대로다. 이 씨도 무경처럼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큰 공장에 입사했고, 무경처럼 작은 키 때문에 현장 대신 실험실에 배치됐다. 작가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이 옮겨진 소설은 그래서 빠르게 읽히는 힘을 가졌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감동적이다. 작가는 “여건이 좋건 좋지 않건 간에, 중요한 것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그 무엇을 잊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열일곱 살에 세상을 보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작가의 마음이 소설 ‘17세’에 오롯이 담겼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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