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매카시 광풍에 맞선 기자들…‘굿 나잇 앤 굿 럭’

  • 입력 2006년 3월 16일 03시 05분


사진 제공 시네티즌
사진 제공 시네티즌
미국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은 사회 정의를 위해 진실을 파헤치고 보도를 방해하는 권력에 맞서는 방송국 기자들의 분투를 그렸다는 점에서 국적을 뛰어넘어 비슷한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을 등장시킨 영화는 간간이 있었지만 근래 들어서는 드물었다. 이제 기자들이 영화에서처럼 일치단결해 맞서 싸울 적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당대가 아니라 50여 년도 넘게 시절을 거슬러, 온전히 흑백으로 그 시절을 재현하며 추억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추억’에 대한 이야기다. 용기만 있다면 함께 공유할 ‘가치관’이 있었던 그 시절, 정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또렷하여 부연 설명이 필요 없었던 그런 시절에 대한 추억 말이다. 시간은 진보의 방향으로 흐른다고 하지만, 이제 보이는 적이 아닌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느라 전선이 너무도 많은 시대를 사는 기자들은 영화 속 기자들의 단결과 우정과 의리와 인간애를 대하면서 문득 시간이 진보라는 명제에 의심을 가져본다. 지금, 우리 기자들은 과연 그들보다 행복한가.

영화 제목 ‘굿 나잇…’은 미국 CBS 방송사의 유명한 뉴스 앵커 에드워드 머로가 자신이 진행한 뉴스 다큐멘터리 쇼 ‘SEE IT NOW’를 마칠 때마다 했던 마지막 멘트다. 머로는 ‘정부에 200여 명 이상의 공산주의자들이 있다’는 1950년대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폭탄선언에서 비롯된 공산주의자 색출 파동(이른바 매카시 열풍)에 정면으로 맞섰던 실존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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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로 찍힐까봐 아무도 나서지 못했던 그 시절, 머로는 “(미국민들은) 공산주의에 물들지 않고도 공산주의 이념을 논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국민이다”며 사상의 자유를 외쳤다. 연좌제에 걸려 강제 퇴역당한 사병의 이야기를 다룬 디트로이트 신문 단신을 탐사 보도하는 머로(데이비드 스트라던)와 프로듀서 프레드(조지 클루니)는 이 인권침해의 뿌리에 매카시 의원의 편협한 공산주의관이 있음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매카시 의원은 머로의 과거 행적을 들먹이고 광고주들은 광고를 빼겠다고 압력을 넣는다. 결과는 매카시 의원의 몰락과 머로의 승리라는 다분히 권선징악적이지만 입체감 있는 구성으로 영화적 완성도를 높였다.

기자들은 강한 신념을 갖고 있지만 ‘혹 우리가 틀리면 어떻게 하는가’ 두려워하고, 사주는 용기 있는 기자들을 믿으면서도 ‘몇 명의 기자 때문에 수많은 기자를 잃을 수는 없는(폐업에 대한 두려움)’ 사정 때문에 고뇌한다. 특종에 환호하며 밤새 술을 마시고 숙취도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다음 보도를 준비하던 그 옛날 미국 기자들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다.

영화 속 머로는 이렇게 말한다. “TV란 것이 한갓 오락기계로 변해 버려 그 장점이 사라지게 된다면 가치 있는 프로들은 자연도태되겠지요. TV는 가르치고 계몽하고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인간이 그런 목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이 없는 한 TV는 바보상자로 전락할 뿐입니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 조지 클루니가 감독한 작품으로 화제가 됐으며 각본 역시 그가 썼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2005년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5년 전미 비평가협회 선정 ‘올해의 영화’로 꼽혔다. 머로 역의 데이비드 스트라던의 호연은 배우가 ‘눈(eyes)’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지 깨닫게 해 준다. 16일 개봉. 12세 이상.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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