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어둠을 헤치고 장명등(長明燈)을 든 조선시대 여인들이 등장하는 영화 도입부. 그들이 장옷 사이로 얼굴만 빠끔 내민 채 음란서적을 구입하기 위해 분주하게 발길을 재촉하는 순간=인공조명의 냄새를 의도적으로 풍기는 달빛을 통해 온몸을 가린 아낙네들의 움직임을 물화(物化)시킨다. 아낙네들이 저마다 숨기고 있는 억압된 육욕을 시각화하는 효과를 내는 것. 아, 여인들의 밀물 같은 욕망이여.
② 선비 윤서(한석규)가 온몸을 얻어맞아 초주검이 된 음란서적 불법유통상 황가(오달수)의 등에 뜸을 떠주는 순간=3등분된 화면에 주목할 것. 주인공 윤서를 중간에, 황가를 오른편에 둔 뒤 햇빛이라는 또 다른 ‘인물’을 왼편에 등장시킨다. 좌측 상단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이 윤서의 갓을 통과한 뒤 황가의 등까지 따스하게 도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황가의 등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뜸 연기가 햇빛과 몸을 섞는 매혹적인 순간.
③ 왕의 후궁인 정빈(김민정)이 불법 복제된 서화에 대한 수사를 윤서에게 의뢰하는 순간=정빈의 머리 위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역광은 왕실의 권위와 여인(정빈)의 신비로움을 이미지화한다.
④ 정빈이 처음으로 윤서의 품에 안긴 순간=윤서의 왼 어깨를 짚은 정빈(아니 김민정)의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아찔하도록 섬세한 곡선은 그 자체로 화면의 장식미가 된다. 섬섬옥수(纖纖玉手)의 성적 매력이 발휘되는 순간.
⑤ 정빈이 하녀로부터 마사지 받으면서 앞에 놓인 새장을 바라보는 순간=정빈은 자신을 둘러싼 음탕한 소문의 정체를 이실직고하라면서 하녀를 옥죈다. 8각형 창, 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황금빛 햇살, 이 햇살을 받아 역시 황금색으로 빛나는 침구, 정빈의 매끈한 몸, 화사한 병풍이 빚어내는 밀도 높은 미장센.
⑥ 윤서가 쓰는 음서(淫書)에 대해 윤서와 황가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뒷모습=문틀 속에 ‘가둬놓은’ 두 남자의 뒷모습은 액자 속 그림을 보듯 안정되고 장식적인 동시에, 시대의 무게에 질식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심리효과를 낸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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