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쟁점이 된 것은 뉴욕 백남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장조카 켄 백 하쿠다 씨와 백남준 미술관을 짓는 경기문화재단 사이의 마찰. 하쿠다 씨는 ‘미술관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며 5월 9일로 예정된 미술관 착공식에 불참 의사를 밝혔다. 그는 △49재 아이디어를 달라고 재단 측에 요청했지만 의견은 주지 않고 장례식 직후 유골을 한국으로 가져가겠다고 했으며 △작고 100일 행사는 순수한 추모행사로 치르기를 원했으나 재단 측이 미술관 기공식과 함께 하겠다고 일방 통보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대해 경기문화재단 측은 백남준 스튜디오 측의 ‘부실 자문’과 ‘무리한 요구’가 마찰의 원인이라며 반박했다. 재단 측에 따르면 △스튜디오 측의 제안에 따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큐레이터 존 핸하트 씨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매달 5000달러의 자문료를 지급했으나 부실 자문으로 인해 지난해 12월부터 자문료 지급을 중단했으며 △스튜디오 측이 전문컨설턴트 10여 명을 추가로 고용할 것을 요청하는 등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을 거듭 제시했다는 것. 재단 측은 하쿠다 씨 측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미술관 건립과 개관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양측의 불신은 깊지만 중재자 역할을 맡을 사람이나 채널이 없다는 것이 아쉬움이다. 유족 측은 경기문화재단뿐 아니라 국내 미술계에 대해서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백남준 스튜디오 측은 “49재는 모든 이를 위한 행사”라며 “미술계 인사들을 따로 초청하지는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미술계에서도 1996년 백남준 씨가 쓰러진 뒤 유족들의 차단으로 작가와의 접촉이 극히 힘들었다는 불만을 제기한다.
한편 고인의 부인 구보타 시게코 씨가 하쿠다 씨와 별도로 16일 뒤늦게 입국한 사실을 놓고도 해석이 분분하다. 구보타 씨는 “서로의 일정을 몰랐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17일 백남준 씨의 ‘다다익선’이 전시된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경기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 미술관 건립 예정지를 방문해 기공식 참석 의사를 밝혔다 .
한 미술계 인사는 “고인은 유족만의 백남준이나 한국만의 백남준이 아니라 진정한 세계인이었다”며 “그를 기리는 진정한 방법은 미술관의 컬렉션이나 추모행사가 아니라, 백남준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남준 씨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들이 오래도록 빛날 수 있도록 힘을 합치는 것은 남은 사람들 모두의 책임이라는 얘기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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