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766년 영국 인지조례 폐지

  • 입력 2006년 3월 18일 03시 05분


1765년 8월 미국 보스턴 거리에선 허수아비 처형식이 열렸다. 시위대는 나무에 허수아비의 목을 내걸고 불을 질렀다. 불타는 허수아비 앞에서 그들은 외쳤다.

“대표 없이는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시위대는 영국 정부가 미국 식민지에 부과한 ‘인지조례(Stamp Act)’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허수아비의 주인공은 지역 인지판매 대리인이었다. 시위대는 인지를 탈취해 거리에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인지조례 반대 테러는 미국 내 다른 지역으로 급속히 번져갔다.

영국은 돈이 필요했다. 1700년대 중반 ‘7년 전쟁’에서 프랑스에 이기며 광활한 미국 식민지를 넘겨받았지만 인디언 원주민의 공격을 막아낼 자금이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인지조례. 서류, 증서, 신문 등 모든 종류의 인쇄물에 인지를 첨부하도록 식민지인들에게 요구한 것이다.

저항은 강력했다. 식민지인들은 이미 영국에 세금을 바치고 있었지만 대부분 관세와 같은 간접세 형식이었다. 인지 납부와 같은 직접세를 요구한 것은 처음이었다. 직접 인지를 사서 붙여야 한다는 것은 굴욕이자 식민지 탄압이었다. ‘식민지는 본국 의회에 대표를 보내지 않았으므로 본국 의회는 식민지에 과세할 권리가 없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반발은 영국 내에서도 뜨거웠다. 미국의 조직적인 영국 상품 불매운동 때문이었다. 식민지인들은 영국 상품을 사지 않기 위해 집집마다 물레를 돌리며 직접 옷을 만들어 입었다. 영국 의회에는 “왜 뚱딴지같은 짓을 해서 우리에게 손해를 입히느냐”는 영국 상인들의 편지가 빗발쳤다. 의회는 손을 들었다. 1766년 3월 18일 인지조례는 실시 3개월 만에 폐지됐다.

이후에도 영국은 포기하지 않고 갖가지 납세 조례를 만들어 식민지인들에게 부과했다. 이에 대한 반발은 식민지 저항 운동으로 확산되어 결국 미국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세금은 반대급부를 수반하지 않고 강제적으로 징수된다. 언제라도 국민의 정치적 심리적 저항을 유발할 수 있는 요건을 지니고 있는 셈. 그래서 역사적으로 과중한 세금이나 그릇된 세금부과는 중대한 정치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세금 좀 더 거둬들이려다 미국의 독립운동까지 초래한 영국의 쓰라린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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