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부자들은 미국의 베벌리힐스와 같은 별도의 주거지역을 형성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임대아파트와 호화스러운 대형 민간아파트가 같은 단지 내에 건축되는 것은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리 사회에선 아무리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도 자신이 엘리트라고 공공연히 말하지 못한다. 자신을 엘리트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대중으로부터 고립된다.
“한국만큼 차별에 민감한 사회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평등주의는 원인보다 결과에 더 민감하다. 우리 사회에서 ‘구별(distinction)’은 곧 ‘차별(discrimination)’이다.”
한국사회는 매우 불평등하다! 대부분이 그렇게 여긴다. 실제로도 197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확대일로에 있고, 상향 이동의 통로는 점차 좁혀져 불평등의 재생산 구조는 그만큼 단단해진 측면이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배양해 온 평등 지향적 이데올로기는 여하한 불평등에 대해서도 버럭 역정을 낸다.
저자는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이 빚어낸 사회적 현상과 그 이면을 들춰보고자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과 관련한 쟁점들을 사회학 이론 및 분석의 공간으로 끌어들여 온 그는 ‘한국적 평등주의’의 화두를 던지며 묻는다. 한국의 평등주의는 어떤 논리로 무장하고 있는가? 평등주의는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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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평등주의는 자유주의 사상과 발을 맞추지 않을 때 급진적 이념으로 발화(發火)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자유주의로 견제된 평등 이념, 이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라는 것.
평등주의의 장점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것은 ‘사회 정의’의 개념을 어떻게 정립하고 제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저자는 마이클 왈저의 ‘다원적 평등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 핵심은 하나의 가치체계에서 불평등이 다른 가치체계의 불평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정치적 권력을 거머쥐거나 같은 죄를 지어도 가난한 사람에 비해 형량을 적게 받아서는 평등한 사회라고 할 수가 없다.
“막스 베버가 계층화의 3대 요소로 지목한 ‘3P’, 재산(Property) 지위(Prestige) 권력(Power)이 서로 경계를 허물고 침투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가 중요하다. 왈저의 말대로 강자와 약자, 행운아와 불운아, 부자와 빈자를 함께 연결시키고 이해관계의 모든 차이를 초월하는 연합으로서 정의와 평등의 개념에 대한 ‘사회협약’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 자체가 ‘예술로서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관용의 수준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저자는 당부한다.
“이제는 한국사회도 ‘인정(認定)의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 협약정치의 전제조건은 ‘양보의 기억’을 쌓아가는 것이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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