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01년 동아일보사 자료실에서 발견한 오래된 문서에서 출발한다. ‘전 국회의장 이기붕가 출입인 명부.’ 4·19혁명 직전인 1959년 1월 4일∼12월 30일 이기붕 당시 국회의장의 자택 방문자 명단과 선물 목록을 동아일보 기자들이 옮겨 적은 자료다.
이 자료를 발견한 미술평론가인 저자는 하루 평균 20∼30명의 방문객이 들고 온 1500여 건의 선물에 주목한다. 휘발유 몇 드럼과 쌀 몇 가마, 5만 환이 든 봉투, 갈비 몇 짝은 그렇다 쳐도 과자 한 봉지와 새우젓, 깨소금, 멧돼지 뒷다리, 병아리, 만둣국, 바늘쌈지도 뇌물이었을까. 1959년생인 저자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그해 신문 지면 속의 일상사를 탐색한다.
그 결과 선물 품목으로 14차례 30상자나 등장하는 씨날코는 독일에서 개발된 고급 과일음료였음을 알게 된다. 요즘 시각으론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온갖 선물 목록은 객차의 70%가 전등 없는 ‘암흑열차’, 전국 커피의 90%가 미군 PX에서 흘러나올 만큼 생필품이 부족한 시대의 맥락에서 나온 ‘뇌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를 일일이 손으로 기록한 동아일보 기자들의 기록정신이 빛나는 순간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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