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19>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0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패왕 항우가 해하의 진채를 빠져나가던 새벽 한왕 유방은 그곳에서 20리쯤 떨어진 한나라 중군 진채에서 자고 있었다. 한왕은 패왕을 에워싸고 있는 한군 가까이에 진채를 내리고 대군을 단속하고 싶었으나, 한신이 말려 이번에도 싸움터에 몸소 끼어들 수는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입니다. 자칫 항우에게 판세를 뒤집어엎을 호기를 줄 수도 있으니 대왕께서는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한신은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한왕의 주변에 5만이나 되는 정병을 남겨 지키게 했다. 거기다가 스무 배가 넘는 대군으로 패왕의 진채를 에워싸고도 이틀이나 결판을 미루자 한왕은 그런 한신이 지나치게 소심해 보였다. 그래서 간밤 불만스럽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미처 뒤숭숭한 꿈에서 깨기도 전에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더니 군막 밖이 수런거렸다.

“밖에 무슨 일이냐?”

한왕이 깨난 기척을 하며 가까이서 시중드는 이졸에게 물었다. 그 이졸이 군막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말했다.

“회남왕(淮南王)에게서 급한 전갈이 왔다고 합니다.”

한왕은 초군의 남쪽 길을 끊고 있는 경포에게서 급보가 왔다는 말에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얼른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전포를 걸치며 말했다.

“들라 이르라.”

오래잖아 젊은 아장(亞將) 하나가 이미 동이 터 훤해진 군막을 제치고 들어와 알렸다.

“회남왕께서 이르시기를 조금 전 어둠 속에 한 떼의 인마가 우리 진지를 뚫고 남쪽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동트기 전의 어둠이 짙은 데다 워낙 거센 회오리처럼 말을 몰고 사라져, 누가 이끌고 머릿수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심상치 않은 일로 보입니다. 이에 대장군인 제왕(齊王)의 군막에 알리는 한편 대왕께도 고하라기에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그 말에 한왕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좌우를 돌아보고 소리쳤다.

“남쪽으로 뚫고 달아났고, 모두 기마대라면 그 우두머리는 틀림없이 항우일 것이다. 어서 진중의 장수들을 이리로 모아들이라.”

그리고 장수들이 모여들자 그들을 돌아보며 탄식하듯 말했다.

“과인은 대장군이 항우를 막다른 곳에 몰아놓고도 날을 끄는 게 걱정스러웠다. 호랑이가 기어이 갇혀 있던 우리를 부수고 달아났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그때 장수들과 함께 불려왔던 장량이 잔잔한 말투로 한왕의 걱정을 달랬다.

“설령 빠져나간 것이 항왕이라도 대왕께서 조금도 심려하실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실로 우리가 바라던 바입니다. 간밤 사방에 초나라 사졸을 풀어 초가(楚歌)를 부르게 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한왕은 간밤 장량이 군사들 가운데서 초가를 잘 부르는 자들을 골라 한신의 진채로 보내던 일을 떠올렸다. 적잖이 궁금했으나 한번 대장군 한신에게 맡긴 병진(兵陣)의 일이라 굳이 캐묻지 않고 보고만 있었는데, 그게 바로 항우가 달아나게 만들기 위한 계략이었다니 늦었지만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어찌해서 그렇소?”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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