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대표적인 독일 기업으로 손꼽히는 브라운과 아우디를 찾았다.
독일 디자이너들은 인간의 삶이 디자인에 반영되므로 디자인은 곧 행동방식이고 삶에 대한 관심이라고 말했다. 실용성과 기능을 중시하는 독일 디자인의 단초를 엿본 듯했다.
“기존의 단순한 독일 디자인으로는 한계가 있다.” “바우하우스라는 독일 디자인의 DNA에 ‘감성’이 더해져야 한다.” “브랜드 정체성(아이덴티티·identity)은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인가.” 그들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브라운, 디자인 혁신 50년
프랑크푸르트 외곽에 있는 브라운 본사에 들어서자 마케팅 담당 매기 드 가스페리 씨가 설명했다.
“2005년 브라운은 ‘디자인 혁신 50주년’을 맞았습니다. 1955년 디자인 혁신을 시작해 1960, 70년대에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회사 전체가 인정하게 됐지요.”
1958년 처음 나온 믹서는 똑같은 디자인으로 30년간 팔렸다. 무광택 검은색 전기면도기가 1962년 출시됐을 때, 큰 화제를 모았다. 순백색의 매끈한 커피 메이커에는 ‘브라운(BRAUN)’ 로고만큼 잘 어울리는 것이 없었다. 이 회사에서도 1960년대 말 제품디자인은 판촉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마케팅 부문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디자이너는 흔들리지 않았다.
당시 브라운의 디자인 최고 책임자였던 디터 람스 씨는 이렇게 말했다.
“디자이너의 책임은 실질적인 삶에 가랑비처럼 조금씩 스며들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브라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굿 폼(good form)’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기계 생산의 합리주의와 기하학적인 형태를 시적으로 결합하는 회사로 명성을 높였다.
현재 선임 디자이너 피터 슈나이더 씨는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브라운이 잡아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그는 “시장의 흐름을 우선 파악해야 한다”며 “지역 문화 특성을 고려한 글로벌 플레이어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시장은 유럽 디자인이 잘 통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취향이 독특하고 주장이 강해 어떻게 파고들지 궁리하고 있어요. 지역마다 요구가 다양하죠. 이런 복잡한 문제를 푸는 열쇠는 무엇일까요. 브라운의 디자인 철학은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는 것입니다.”
과거 브라운 제품은 로고를 가리더라도 금방 브라운의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정보는 쉴 새 없이 대륙을 오가고, 소비자의 눈앞에는 늘 신제품이 있다.
“브라운이 디자인 정체성을 잃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일부 인정하는 면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브라운 제품에도 곡선을 많이 사용하고 장식 요소를 부가하고 있지요. 그것이 세계적인 트렌드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브라운의 경쟁력으로 정교한 디테일을 꼽겠습니다. 결국 ‘굿 디자인’이죠.”
○아우디, 한발 앞서가자
뮌헨 공항에서 아우디 본사가 있는 잉골슈타트까지 자동차로 1시간 거리.
시원하게 뻗은 아우토반으로 아우디, BMW, 벤츠 등 독일 차들이 경주하듯 달리고 있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선임 디자이너 사토시 와다 씨가 자료사진을 펼쳐 놓았다. 커다란 테이블 위로 종이 자동차들이 질주했다.
“아우디는 바우하우스 전통을 지키면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려고 합니다.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는 것이 아우디의 디자인 철학인데, 너무 차갑다는 지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 철학에 감성과 휴머니티를 더해 요즘의 아우디 디자인이 태어났지요.”
그는 아우디의 과거와 현재가 손을 맞잡고 있다는 설명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옛것을 이어받되 현대에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이냐는 고민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991년 쇼 카(Show Car) ‘AVUS’는 1937년 ‘오토 유니온 타입C’를 계승했고, 1995년 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 카는 ‘TT’로 양산됐다.
그가 디자인한 신형 A6는 차가운 금속이 풍부한 감수성을 담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프런트마스크는 역동적이면서 깊은 내면의 힘을 지닌 인간의 얼굴을 표현했고, 차체의 라인도 인체의 곡선을 가져왔다.
“디자인은 정체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요소들이 더해져 발전해야 하지요. 소비자가 추구하는 쪽으로 따라가기보다 트렌드를 만들고 방향을 제시하는 게 아우디의 정신입니다. 남보다 한발 앞서 가는 것이지요.”
아우디 박물관에서는 ‘콰트로(quattro) 25주년’ 기념 전시가 한창이었다. 1980년 선보인 스포츠 세단 스타일의 ‘콰트로 스포츠’부터 아우디 디자인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
아우디는 선임 디자이너와 젊은 디자이너가 박물관을 거닐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그 속에서 아우디라는 브랜드 정신이 싹튼다고 했다. 아우디의 디자이너는 모두 100여 명. 상당수가 외국인이다.
아우디에 오기 전 일본의 닛산 자동차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좋은 디자인이란 지나치지 않는 것(not to excess)이라고 했다.
“베리 심플(Very Simple), 독일인의 삶과 비슷하지요?”
프랑크푸르트·잉골슈타트=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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