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삶과 역사를 그려온 화가 강요배(54) 씨의 말이다. 22일부터 4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학고재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땅에 스민 시간’을 둘러보면 화가의 말이 실감난다.
전시장에 나온 작품마다 서정이 물결친다. ‘홍매’ ‘수선화 밭’ ‘억새꽃’ ‘감나무’ ‘감꽃’ ‘팥배나무’ 등 제목만 훑어봐도 짐작할 수 있듯, 깊고 오래 자연을 응시해온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들이다. 작가는 “강한 명암 대비나 필세의 강도를 줄였다”고 설명한다. 제주의 아픈 역사의 흔적을 담아야 한다는 무거운 강박을 덜어내고 마음 가는 대로 붓이 따라간 흔적이 읽힌다. 작품들의 색감은 더 밝아지고 부드러워졌다. 2003년 전시에서 보여주었던 암갈색이나 회색조에서 벗어나 밝은 노란색이나 연분홍색이 눈에 띈다. 작품의 표면도 투박하던 느낌에서 벗어나 훨씬 매끈해졌다.
1층에 걸린 ‘산작약’ ‘겨울 당유자’ ‘멀구슬 새’ 같은 그림에서는 서양화이면서도 전통 수묵화의 정감이 풍긴다. 바람의 운동감이 전해지는 ‘풍송’, 비의 리듬감을 오롯이 담아낸 ‘꽃비’를 보면 자연의 미묘한 ‘움직임’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작가라는 평가에 절로 수긍이 간다. ‘고원의 달밤’ ‘별길’ 등은 별과 하늘을 담은 몽환적인 느낌의 작품들이다. 02-739-4937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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