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5년 아랍연맹 결성

  • 입력 2006년 3월 22일 03시 00분


“과거 몽골군과 십자군이 벌인 것 같은 섬멸과 학살의 전쟁이 될 것이다.”

1948년 5월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한 다음 날 아랍연맹의 초대 사무총장 압둘 라만 하산 아잠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제1차 중동전쟁)을 선언하며 무시무시하게 경고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건국을 막으려던 이 전쟁의 승자는 이스라엘이었다. 사실 이 전쟁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먼저 확보하려는 아랍연맹 회원국들의 영토확보 경쟁의 산물이었다.

트란스요르단(지금의 요르단)은 단독으로라도 이스라엘을 공격해 요르단 강 서안 지역을 확보하려 했다. 이를 알아챈 이집트는 요르단의 야심을 꺾기 위해 뒤늦게 공격에 나섰다.

이후에도 아랍연맹 회원국들은 3차례 더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번번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1945년 3월 22일 아랍연맹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결성됐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영국이 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영국은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맞설 세력으로 아랍연맹을 구상했다. 영국의 지원 아래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등 7개국이 연맹의 최초 회원국으로 참여했다.

아랍연맹 회원국은 현재 22개국. 국제무대에서 공동 이익을 대변하는 만만찮은 조직이다. 하지만 그 역사는 분열과 무기력으로 얼룩져 왔고, 특히 공동 행동이 필요할 땐 ‘절름발이 기구’가 되곤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모로코 등 왕정 국가와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등 공화정 국가의 차이는 오랜 갈등의 근원이었고 냉전기에는 친미(親美)와 친소(親蘇)로 갈렸다.

이스라엘을 겨냥한 공동전선도 제대로 유지되지 못했다.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이집트는 10년간 회원 자격이 정지됐고 아랍연맹 본부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로 옮겨졌다.

아랍연맹은 1980∼88년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을 벌였을 때는 이라크를 지원했으나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태도가 갈렸다. 3년 전 미국의 이라크 공격 시에도 찬성과 반대, 방관으로 갈렸다. 오죽하면 아랍어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마저 아랍연맹을 두고 ‘땅속에 머리를 처박은 겁 많은 타조’라고 비웃었을까.

아랍연맹은 28, 29일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연례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3년을 넘긴 미군의 이라크 점령과 새로 등장한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부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아랍 국가의 공동선언이 나올 전망이다. 하지만 늘 그랬듯 조율이 쉽지 않다는 소식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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