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호 교수의 미디어 월드]인터넷 누리꾼들의 상상력

  • 입력 2006년 3월 22일 03시 00분


‘공길’이 ‘장생’이 아닌 왕을 선택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 영화 ‘왕의 남자’를 관람하고 나서 든 궁금증이다. 이것은 공길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장생의 질문이기도 하며 동시에 영화적 긴장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축이다.

산해진미나 시답잖은 벼슬 때문이라면 너무 영화적이지 않다. 어쨌든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영화 소개 공식 사이트에 가 봐도 ‘알 수 없는 이유’라고 돼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에는 없는 공길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비천한 기생의 신분으로 양반들의 노리개가 되어 고통과 회한으로 가득한 삶을 살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공길의 어머니. 어릴 적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기생질이기에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을망정 그 짓으로 먹고살지만 공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양반에 대한 분노와 불쌍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족쇄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왕과 공길 사이에는 그런 어머니가 있었다.”

짧게 줄여 소개했지만 사실 공길의 어머니 이야기는 필자의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의 창작물로 공길의 1인칭 독백 형식으로 된 글이다. 영화라는 텍스트에 근거한 2차적 창작, 이른바 메타텍스트라는 것이다. 이런 메타텍스트가 만들어지고 유포되는 장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텍스트에 관한 텍스트들로 넘쳐 난다. 이런 2차 텍스트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제3의 텍스트를 구성하기도 한다.

영화 ‘왕의 남자’라는 원래 텍스트는 인터넷에서 변형되고 보완되고 또 해체되기까지 하며 다른 이야기로 거듭나고 있다. 영화 또한 연극의 각색이니 원전이랄 것도 없다. 2차적 글쓰기가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폄훼될 수 없다. 베스트셀러 ‘장미의 이름’의 저자 움베르토 에코도 메타텍스트적 글쓰기로 유명하다.

인터넷의 2차적 글쓰기의 소재는 물론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주 우리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또한 각본 없는 드라마로 메타텍스트의 좋은 소재가 된다. TV로 중계된 경기 내용과는 별개로 30년 운운하며 관중에게 욕설을 내뱉고 경기 패배 후 술에 취해 이도 닦지 않고 침대에 널브러져 잤다는 이치로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드라마다. 사람들은 이런 원래의 텍스트보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메타텍스트 소비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기도 한다.

안민호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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