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우리집에도 봄이 왔어요”…새봄맞이 꽃단장

  • 입력 2006년 3월 2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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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자주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콘체르토 1번 E장조). 봄의 정경을 ‘새들이 지저귀고 냇물이 졸졸 흐르는 듯’ 묘사하는 바이올린 현의 울림이 정겨움을 자아낸다.

꽃도 봄의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꽃은 겨우내 웅크렸던 대지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이다. 기상청이 매년 3월 초순 ‘봄꽃 개화 예상 시기’를 발표하는 것도 꽃이 곧 봄소식이기 때문이다. 올해 개나리는 16일 제주도에서 출발해 중부지방은 25∼30일, 진달래는 19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28일∼다음 달 3일 중부지방에서 꽃을 피울 것으로 보인다.

겨울의 묵은 때를 벗겨 내고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는 화사한 꽃만 한 게 없다. 올해는 핑크나 보라색, 파스텔톤 계열의 꽃들이 인기다. 오전 일찍 꽃시장에 가면 ‘리시안서스’ ‘왁스 플라워’ 등 쉽게 보기 어려운 수입종 꽃도 구할 수 있다.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플라워 숍 ‘화원’의 플로리스트 이순도 실장과 양희정 씨와 함께 15일 오전 6시경 서울 강남구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에 나가 봤다.

새벽부터 봄단장을 서두르는 이들이 가득했다.

○ 꽃과 사람 냄새가 가득

시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수백 가지 꽃향기가 아찔했다. 붉고 푸른 장미부터 하양 노랑 핑크…. 꽃 이름은 그냥 두고 색깔만 헤아려도 수십 가지가 넘는 꽃이 사람 키높이만큼 쌓여 있다. 기자가 찾은 15일은 수요일로, 수입 품종이 많이 들어와 붐비는 날이다.

평소엔 구하기 힘든 색상이나 품종도 이날 들어오기 때문에 새벽부터 시장을 찾는 고객이 많다. 메모지와 펜을 들고 분주하게 도는 이들은 거의 플로리스트나 지방에서 온 상인. 양 씨는 “수요일에 여기 오면 서울 시내의 알 만한 플로리스트들은 대부분 마주친다”고 말했다.

상인이나 물건을 옮기는 짐꾼을 제외하면 남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꽃다발 한두 개를 들고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일반 고객은 대부분 여성. 주부 박현정(34) 씨는 “새벽에 여기 오면 꽃과 사람 냄새를 같이 느낄 수 있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박 씨의 말처럼 은은한 향기로 손님을 맞는 꽃들과 달리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의 땀냄새도 만만찮다. 1∼2평 공간의 매장 100여 개가 붙어 있어 좁은 통로 사이로 지나가기도 쉽지 않다. 기자는 이 실장의 잰걸음을 놓쳐 여러 차례 두리번거리다가 뒤에서 오는 짐꾼들의 호통을 듣기도 했다.

이 실장은 “플로리스트라고 하면 화려해 보이지만 새벽 시장에서 꽃을 흥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며 “부지런히 서둘러 마음에 드는 꽃을 구하면 하루가 상쾌하다”고 말했다.

이곳 상인들은 좋은 품질과 희귀 품종으로 차별화를 도모한다. 한 상인은 “이런 품종을 생산하는 농장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 서로 누구와 계약하는지는 일급 비밀”이라고 말했다.

○ 거실엔 화사함, 침실엔 은은함

15일 오전 6시경 서울 강남구 반포4동 고속버스터미널 3층의 꽃시장. 화사한 자태의 꽃들이 저마다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꽃시장을 찾는 고객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좋은 꽃을 고르는 방법.’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는 ‘그 꽃이 그 꽃’ 같다. 상인들에게 요령을 물었더니 “나쁜 꽃이 어디 있느냐”며 타박만 돌아왔다.

양 씨는 “아직 피기 전의 꽃망울을 고르고 겉잎과 속잎의 시든 정도를 보는 게 기본이지만 꽃마다 고르는 요령이 복잡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한 가게에서 신뢰를 서로 쌓아 믿고 사는 게 좋다”고 말했다.

거래 물량도 많고 전문가들인 플로리스트들은 조금이라도 싼 가격을 찾아 발품을 팔지만 일반 고객들이 살 수 있는 가격은 대체로 비슷하다. 특별한 꽃을 구하는 게 아니라면 서소문이나 남대문 꽃시장을 가도 좋다.

꽃시장의 꽃들은 품질이 서로 비슷해 구매보다 집에서의 관리가 중요하다. 줄기 끝을 2cm 길이의 사선으로 자르는 것은 기본. 국화류는 자른 부위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면 살균은 물론 수분 흡수도 잘 된다. 조팝나무나 라일락은 줄기 끝을 불에 살짝 지져 주는 게 좋은 방법이다.

이 실장은 “꽃을 꽂는 물을 깨끗이 유지하고 시든 꽃은 빨리 제거해 줘야 한다”며 “물에 수명 연장제를 넣으면 좋지만 가정에서는 락스 한두 방울이나 얼음을 함께 넣어도 꽃이 오래 간다”고 조언했다.

요즘은 비닐하우스로 재배하기 때문에 어느 계절에 가도 구하기 힘든 꽃은 거의 없다. 한국에서 인기있는 장미는 색이나 품종에 따라 50여 종이 넘는다. 미리 예산을 잘 짜고 가지 않으면 화려한 색상에 현혹돼 필요하지도 않은 꽃을 골랐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 실장은 “응접실이나 식탁은 즐겁고 상큼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원색 계열의 꽃을 쓰고 침실이나 욕실은 복잡하지 않고 아늑함을 줄 수 있도록 1, 2종류의 파스텔톤 계열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꽃이 있지만 봄에는 봄꽃이 자연스럽다. 노란 파스텔톤이 고운 수선화는 꽃병에 꽂아도 예쁘지만 화분에 심어도 색다른 분위기를 전해 준다. 작은 키에 풍성한 잎을 가진 라눙쿨루스는 색깔이 다양해 수선화와 함께 꾸며 창가에 놓으면 봄 햇살에 잘 어울린다.

한 종류만 꽂아도 봄 분위기를 물씬 내는 꽃으로는 설유화나 조팝나무가 적절하다. 특히 현관에 두면 손님들에게 화사함을 안겨 준다. 산당화는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긴 가지 덕분에 몇 가지만으로 멋을 자아낼 수 있다.

꽃장식 전문업체 ‘플레르 드 루이까또즈’의 수석 플로리스트인 다니엘 피숑은 “새순이 돋아 피는 꽃과 곱슬버들을 함께 배치하는 것은 일반인들도 손쉽게 할 수 있어 유럽에서도 인기가 좋다”며 “수선화나 튤립 등 은은한 파스텔톤의 꽃을 함께 섞는 것도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꽃꽂이 요령… 라일락 프리지어… 공간마다 다른 봄 연출

《집안의 곳곳에 잘 어울리는 꽃병을 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내 분위기나 쓰임새에 따라 각각 다른 분위기의 꽃을 두는 센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플로리스트 이순도 씨가 거실, 침실, 현관, 식당에 어울리는 화병을 비롯해 초대받은 자리에 가져가기에 좋은 꽃다발을 꾸몄다. 가격은 도매상가에서 샀을 경우 화병을 포함한 최소 비용이다.》

▽현관=다양한 꽃을 배치하기보다 2, 3종의 꽃으로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해 손님에게 봄기운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포인트. 동양의 여백미를 느끼게 하는 호접란과 배치된 히야신스와 수선화가 세련된 느낌을 준다. 4만 원대.

▽거실=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은 집안의 얼굴.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면 화목한 집안 분위기를 전할 수 있다. 비교적 크고 풍성한 것이 포인트. 레몬나무와 유칼립투스 잎을 베이스로 깔고 화려함과 편안함을 함께 지닌 수국과 라일락으로 포인트를 준다. 흰색의 조팝나무 꽃은 어디에도 잘 어울린다. 10만 원대.

▽식당=음식에 방해되지 않도록 꽃가루나 꽃잎이 잘 떨어지지 않는 종으로 선택해야 한다. 가족 간 시야를 가리지 않고 손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높이를 낮추는 게 키포인트. 음식물 소화를 돕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노란색 꽃들을 섞으면 좋다. 카네이션과 프리지어, 아네모네가 추천 아이템. 3만∼4만 원대.

▽침실=은밀하면서도 편안한 쉼터의 느낌을 살리는 것이 관건. 은은한 파스텔 계통의 색에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지닌 꽃을 선택한다.

같은 하얀색 계통의 조팝나무 꽃과 함박꽃을 닮은 왁스 플라워를 기본으로 아늑한 느낌의 리시안서스과 튤립, 장미가 부드럽게 어울린다. 3만 원대.

▽꽃다발=한국인들은 꽃보다 포장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경우. 꽃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릴 수 있고 바로 꽃병에 꽂을 수 있도록 다발 장식은 최소화하는 게 좋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 신문지나 투명한 비닐로 간단히 포장한다. 신문지는 꽃을 다치지 않게 하는 종이이며, 비닐은 꽃 상태를 줄기까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골드 계열의 장미에 프리지어와 카네이션으로 만든 꽃다발. 2만 원대(포장 포함).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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