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舊해전사’ 정치공방서 학술토론으로

  • 입력 2006년 3월 27일 03시 06분


지난달 8일 출간 이후 큰 반향을 낳았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재인식)’에 대한 논쟁이 초기의 정치적 거품을 걷어내면서 점차 학술적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상임대표 서영훈) 주최로 열린 ‘해방전후사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는 이런 단초를 보여 줬다.

● 민족주의는 남북통일 때까지 유효

국사학계의 원로이자 1979년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 1권의 필자 중 한 명인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는 이 자리에서 ‘해전사’가 좌파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에 사로잡혔다는 ‘재인식’의 비판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위암 수술을 받고 거동이 불편했던 조 교수는 이날 상당히 건강해진 모습으로 기조강연을 마친 뒤 “‘해전사’ 집필진이 수십 명인데 그 전부를 좌파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지만 민족주의적이라는 지적은 옳다”고 말했다. 그는 “‘해전사’가 나올 당시는 유신 시절 막바지였기 때문에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글을 쓰다 보면 좀 진보적일 수는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진보적 성격을 띤 것을 모두 좌파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정당한 방식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군사정권에 대항해 글 쓰는 사람의 무기로 당시에는 민족주의 말고 다른 것으로 덤볐다가는 크게 다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지 민족주의가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고 민족주의적 시각의 한계를 인정했다.

조 교수는 다만 “민족주의는 한국에서 남북통일 때까지는 유효하고, 세계에서는 아프리카 민족주의가 달성될 때까지는 필요하다”며 탈민족주의로의 전환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해전사’와 ‘재인식’에 모두 필진으로 참여한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재인식’의 출간을 역사 인식의 양극화로 바라보기보다는 역사 인식의 다원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한다면 그것도 문제지만 이를 성공신화의 점철로 도취해 바라보는 것도 문제”라며 “‘재인식’의 출간을 서로 다른 두 개의 역사관의 충돌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생산적 학술 토론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화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은 “현 정부의 과거사 규명이 너무 정치적이고 이벤트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역사문제에 대해선 무관심보다는 과도한 것이 낫다”며 “정부 차원에서 각종 역사기록을 집적하다 보면 역사적 진실은 자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해전사’와 ‘재인식’의 관점의 차이를 이념의 양극화로 우려하기보다는 논쟁을 통해 역사학이 더 발전할 수 있는 성장통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 역사기록 집적하다 보면 진실 드러날 것

한편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하는 자유주의연대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저자와의 만남’을 주제로 전국 순회강연을 개최할 계획이어서 ‘재인식’ 출간이 낳은 후폭풍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강연은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콘퍼런스홀에서 이영훈 서울대 교수의 강연을 시작으로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4월 14일 부산), 주익종 신용평가정보 이사(20일 대전), 전상인 서울대 교수(28일 전주)의 릴레이 강좌로 이어진다.

또 자유주의연대는 4월 7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정동 배재빌딩에서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해방과 건국), 이영훈 교수(구한말의 도전과 응전의 실패), 주익종 이사(일제 36년에 대한 비판적 고찰), 박효종 서울대 교수(왜 건국전후사 재인식인가)의 연속강연을 준비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