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작가는 ‘사막의 낙타’

  • 입력 2006년 3월 29일 03시 04분


22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쌈지에서 개막된 최진기(32) 씨의 ‘뾰족한 눈’ 전. 포도는 다 따먹고 남은 가지만 접시 위에 올려놓은 ‘포도나무’, 일상에서 쉽게 보는 머리핀의 기발한 변신이 눈길을 끄는 ‘기도하는 머리핀’, 고양이 로고가 새겨진 담뱃갑으로 만든 ‘레송 고양이’ 등. 낯익은 일상 사물의 변신은 들여다볼수록 신기하다. 사진과 오브제를 활용한 작품들의 아이러니와 유머가 관객들의 흥미를 더해 주기 때문이다. 피임용 알약의 빈껍데기로 만든 ‘피임약 아기’에는 아기를 키울 여건이 안 되는 가난한 예술가 부부의 삶이 투영돼 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작가는 두 차례의 개인전과 다수의 국내외 입주 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신진 작가. 풀빵 장수로 생활하면서 꾸준히 작업을 해왔다.

풍요롭지 않은 생활이라고 꿈마저 가난한 것은 아니다. 4월 3일 전시회가 끝나면 그는 곧바로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다. 맨손으로 현대미술의 중심부에 뛰어들면서도 그는 당당하다. 전시장을 나서며 “나중에 뉴욕 구겐하임에서 뵙죠”라고 인사하니 “전 휘트니에서 하고 싶은데요. 하하”라는 씩씩한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서울 강남구 신사동 표화랑에서 개인전 ‘Grey Forest’전을 열고 있는 또 다른 작가 정용국(38) 씨. 동아미술제 등에서 수상한 그는 넓은 한지에 정갈한 수묵으로 숲과 바람, 산과 강을 되살려 내는 작가다. 24일 오후 그는 텅 빈 전시장을 홀로 지키고 있었다. 그는 작업에만 전념하기 위해 얼마 전 안정된 직장마저 그만두었다. 조용한 선비 같은 인상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사막의 낙타 같다.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끝내 오아시스를 못 찾아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투자가치가 높은 ‘블루칩 작가’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러나 척박한 환경에서도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고된 작가의 삶을 기꺼이 선택하는 수많은 젊은이야말로 미술생태계의 진정한 블루칩 작가가 아닐까. 그들이 있어 한국 미술은 건강하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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