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인파가 ‘즐길 거리’를 찾아 한곳으로 군집(群集)하는 현상은 롯데월드 사고 때만이 아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무료 개장 때의 장사진, 윤중로 벚꽃축제 인파….
상식적으로 엄청난 인파, 교통 혼잡이 예상되는데도 수많은 사람이 꾸역꾸역 그곳을 향해 집을 나서는 현상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 여가 시설의 부족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이 같은 현상을 놓고 사회학자, 심리학자, 문화평론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합리적 예측력보다 힘이 센 기대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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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무료 개장이어서 어느 정도 사람이 많을 것은 예상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생각 못했어요.”(26일 청주에서 시어머니, 남편, 아이와 함께 롯데월드를 찾았던 서모 씨)
공짜행사를 찾는 심리에는 묘한 자부심도 섞여 있다. 대학원생 박모(28) 씨는 “공짜 이벤트에 갈 때는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내가 잘 체크해 돈을 덜 지출했다는 우월감, 남들보다 알뜰히 소비한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고 했다.
○좁은 땅+첨단 통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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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엽(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복합적 채널의 발달로 정보가 빠르고 넓게 확산될 수 있다는 환경적 요소가 큰 작용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일요일 롯데월드에 시댁 식구와 함께 갔던 인천의 마순영(35) 씨는 “원래 에버랜드에 가려다 남편이 인터넷에서 무료 이벤트를 발견해 행선지를 즉각 바꾸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폐쇄된 공간에서 탈피해 광장, 기성세대의 사회적 통제를 받지 않는 놀이공간을 열망하는 젊은 층의 사회 심리적 욕구도 한 요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26일 롯데월드에 몰린 인파의 70%가량은 10대였다. 이들에겐 화제의 현장에 모이는 것 자체가 자극이고 그 경험이 또래의 이야깃거리다.
소방대원이 “이렇게 고생인데 왜 왔느냐”고 묻자 “우리는 끝까지 기다릴 거예요”라고 소리쳤다는 신모(14·인천 M여중 2) 양은 “방송부 언니들이 전날부터 밤을 새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하는 대신) 더 일찍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친구 4명과 새벽 5시에 롯데월드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나만 빠지면 손해 보는 건 아닐까…
김명언(심리학) 서울대 교수는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동에서 한 원인을 찾았다. 한국 사회는 ‘어울려 사는 문화’에서 ‘떨어져 사는 문화’로 급속히 이행했고 그 심리적 반작용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공간’에 대한 원형적 욕구가 있다는 것. 또 위계질서가 엄격한 회사 등의 소속 집단이 아니라 위계질서가 형성되지 않은 익명의 존재들과 어울리는 것을 통해 평등화의 쾌감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타인, 다수의 의견에 큰 영향을 받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자신의 개성에 따른 여가생활보다는 ‘지금 이 시기엔 ○○를 해야 가장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집단적 인식이 여전히 위력을 갖고 있으며, 남들 다 하는데 자기만 빠지면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불안감이 여전하다는 분석이다.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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