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중심으로
우리 가족은 카메라를 보고 있다
아니, 카메라가 초점에
잡히지 않는
우리 가족의 균열을
조심스레 엿보고 있다
더디게 가는 시간에 지친 형들이
이러다 차 놓친다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담장처럼
잠시 후엔 누가 붙잡지 않아도
제풀에 지쳐 제각각 흩어져
갈 것이다
언제나 쫓기며 살아온 우리 가족
무엇이 그리 바쁘냐며
일부러 늑장을 부리시는
아버지의 그을린 얼굴 위로
플래쉬가 터진다
순간, 담장을 타고 올라온
노오란 호박꽃이
푸른 호박을 끌어안고
환하게 시들어간다
―시집 ‘물오리 사냥’(천년의시작) 중에서
온 식구가 모여 살던 대가족 시절에는 굳이 가족사진이 필요 없었으리라. ‘무너지기 시작한 담장처럼’ 뿔뿔이 흩어질 것이기에 저 바쁜 와중에도 누군가 가족사진을 제안했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십중팔구 할머니이거나 아버지일 것이다. 자식들이 떠나고 나면 사진틀에 끼워진 자식들이 ‘눈 효도’를 대신할 것이다. ‘노오란 호박꽃’이 ‘푸른 호박’이 되고, ‘푸른 호박’이 ‘누런 호박’이 되는 거야 하늘의 섭리지만, 물오리 새끼처럼 자식들 풍기어 떠나고 나면 노인들뿐인 낡은 시골집엔 저녁 햇살도 일찍 이울리라.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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