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방지 클리닉 ‘라 끄리닉 드 파리’의 서울 강남구 청담점 이기문(38) 원장의 아들 이진우(7) 군은 발달장애가 있다. 흔히 자폐증으로 불리는 증상이다. 이 원장은 “자폐라는 말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는다는 의미여서 적절하지 않다”며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소통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진우는 장애아가 아니다.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다.
○‘다름’을 인정하기
진우는 세상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평범하지 않다. 바지에 물이 조금만 묻어도 모든 옷을 새로 갈아입어야 한다. 낯선 사람은 물론, 새 옷이나 새 신발에 익숙해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이 원장은 “단순한 일이지만 아이에겐 하나하나가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일 수 있다”며 “그것이 우리의 느낌과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에게 놀아달라고 칭얼대지만 진우는 엄마가 가서 놀아달라고 해야 한다. 엄마는 진우와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지만 진우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진우의 놀이에 초대받기는 쉽지 않다. 블록 쌓기나 기차놀이를 할 때 엄마가 다가가 말을 시키면 귀찮은 듯 다른 데로 가 버린다. 따라가서 끊임없이 말을 시키며 반응을 이끌어 내야 한다. 여유를 갖고 진우가 하는 말에 열 번 수긍해 주면 한 번 반응을 보인다.
영화 ‘말아톤’에서 주인공 초원이가 얼룩말 무늬를 좋아하듯 발달장애아들은 어느 한 가지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 원장은 “놀이에 초대받기 위해서는 엄마가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가 경험으로 알아야 한다”며 “최대한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의 패턴을 따르면서 그것을 조금씩 확장시켜 교육이 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숫자를 좋아하는 진우를 위해 모든 것에 숫자를 붙여 흥미를 느끼도록 했다. 이를 닦을 때 윗니는 1번, 아랫니는 2번으로 정해 “우리 1번을 10번 닦고 ‘퉤’ 해 보자. 그 다음엔 2번이야”라는 식으로 했더니 금방 따라왔다. 옷을 입을 때도 윗도리는 1번, 바지는 2번 등으로 순서를 정해 번호를 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이 원장은 “글자나 셈을 잘하는 것보다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데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도 나를 크게 한다
외식을 할 때 진우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울거나, 할인매장에서 다른 사람의 카트에 있는 물건을 집어 와 엄마를 당황하게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이 원장은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어서 그러니 죄송하다”고 털어놓고 이해를 구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발달장애의 현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도 금방 이해를 해 주는 편이다.
그도 처음엔 ‘전생에 큰 죄를 지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왜 나야?’하면서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마음은 진우가 내게 짐이 된다는 데서 온 듯해요. 시간이 지나자 ‘왜 나면 안 되는가’하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이 원장)
‘큰 좌절을 겪지 않고 살아왔다’는 그에게 진우는 인생에서 처음 닥친 어려움이었다. 진우가 아니었다면 그는 “운 좋은 줄 모르고 나 잘났다고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우를 대하면서 이 원장은 인내를 배웠다. 같은 의사인 남편도 늘 “도 닦는 심정”이라고 말한다. 부부는 이제 세상에 화를 낼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원장은 “진우 덕분에 나도 크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 찾기
이 원장은 아들과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2003년 병원을 그만두고 1년 반 동안 집에 있었다. 놀이 교실도 관두게 하고 24시간을 진우와 함께 보냈다. 놀이 치료를 같이 배우기도 했다. 2005년 개원한 뒤에도 수요일은 휴진하고 진우와 시간을 보낸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 원장은 밝고 높은 목소리로 진우에게 묻는다. “우리 진우 저녁 먹었어요? 반찬은 뭐였나요? 맛있었나요?”
지난 일에 대한 회상이 잘 안 되는 진우를 위해 자꾸 묻는 것이다.
답을 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질문하면 아이는 ‘엄마에게는 대답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이를 다른 상황에도 일반화시키게 된다. 아직 엄마에게 먼저 말을 걸지는 않지만 진우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가장 힘든 점은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 내년에는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특수학교가 좋을지,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학교에 보내야 할지 고민이다. 진우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전문의나 치료사의 의견도 각각이다. 엄마가 수많은 의견을 듣고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앞으로 동생 서연(4) 양이 오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걱정이다. 그래서 온 가족이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 원장의 꿈은 발달장애아와 가족들을 위한 치료 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발달장애아의 부모를 위한 조언
무엇보다 아이의 장애를 최소화해야 한다. 장애가 남더라도 적응적인 장애(adaptive disability)가 돼야 한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고치려 하기보다 아이들의 적응 기능을 높이는 게 효과적이다.
▽전문의의 체계적 평가를 받으라=발달장애에 대해 부모가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아이의 양육자로서 어느 발달 영역이 얼마나 문제이고 보통 아이들과 무엇이 다른지 알아야 한다. 임상 현장의 평가가 뇌 검사보다 더 중요하다.
▽맞춤형 발달 목표를 설정하라=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도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발달한다. 이에따라 아이에게 맞는 발달 증진을 기대하는 것이 좋다. 특정 영역에 대한 발달의 불균형으로 인한 이차적인 문제도 함께 예방해야 한다. 역시 전문의와 상의하라.
▽일상생활과 사회적 교류를 위한 훈련에 치중하라=부모는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학업이나 직업적인 성취를 목표로 하기 쉽다. 그러나 목욕, 옷 입기 등 일상생활 기능의 획득, 물건 사기를 비롯한 대인관계기능의 유지, 음악 듣기 등 생활을 여유있게 즐기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최대한 주변의 도움을 받으라=전문가는 물론이고, 가족과 친지를 비롯해 같은 문제를 가진 부모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하라. 부모들의 모임에도 적극 참여하라.
▽정기적인 전문 평가를 받으라=발달 증진 치료나 교육의 효과를 점검해 궤도를 수정해 가야 한다. 정기적 점검 없이 무작정 치료를 받는 것은 낭비다. 특히 문제가 없는 형제가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상담도 받아야 한다.
송동호 교수 연세대 의대 영동세브란스 병원 소아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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