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여덟 개의 팔완목(八腕目)에 속하는 문어 낙지 주꾸미. 크기만 다를 뿐 모습은 비슷하다. 그러나 다리의 힘에서 이들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낙지 문어는 물 밖에 나오면 몸통을 가누지 못해 흐느적거릴 뿐이다. 주꾸미는 다르다. 물 밖에 던져 놓으면 벌떡 일어서기도 한다. 물론 이내 쓰러지고 말지만. 여덟 개의 ‘숏다리’에 힘을 주고 몸통을 곧추세우는 당돌한 주꾸미. 그제야 알았다. 갯가 사람들이 봄 주꾸미를 왜 그리 즐기는지.
파도와 바람에 실려온 봄의 훈기가 마량포구 동백나무 숲의 빨간 동백꽃을 간질이는 이즈음. 홍원항(충남 서천군 서면) 어민은 바빠진다. 여린 쑥처럼 봄바다에서 나기 시작한 힘 좋은 주꾸미 덕분이다.
봄이면 서해 어디서나 나는 주꾸미. 그런데도 서천사람들은 서면 주꾸미를 최고로 친다. “바다와 개펄이 살아있기 때문이지요. 잡히기도 많이 잡히고 맛도 최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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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 잡이 어민 김인환 씨 말이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면 이웃한 마량리 동백 숲 앞에서 ‘동백꽃 주꾸미 축제’를 연다. 올해도 25일 개막해 4월 7일까지 열린다.
홍원항내 갯가식당은 주꾸미 일색이다. 수십 척 배가 코앞의 바다에서 봄기운 한껏 머금은 주꾸미를 매일 수백 kg씩 포구에 쏟아낸다. 주꾸미가 쏜 먹물로 온통 검게 변한 수족관, 그 유리에 다닥다닥 붙어 바깥 세상을 구경하는 주꾸미.
주꾸미잡이 배에 올랐다. 10분쯤 달렸을까. 동백정 앞바다에서 엔진을 껐다. 수면에 뜬 부표 수십 개. 그중 하나를 끌어당겼다. 부표에는 빈 고둥껍데기가 줄줄이 매달린 로프가 연결돼 있었다. 그 로프를 윈치로 감아올리면서 주꾸미잡이는 시작된다.
주꾸미는 고둥껍데기 속에 온 몸을 끼어 넣고 숨어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리를 뻗어 몸을 빼내는 주꾸미. 순간 갈퀴 끝을 고둥 안에 집어넣어 주꾸미를 낚아챈다. 바닥에 떨어진 주꾸미. 여덟 개 다리에 힘을 모아 벌떡 일어선다.
이런 채취방식을 ‘소라방’이라고 부른다. 고둥껍데기는 1m 간격으로 매다는데 그 수가 보통 5000개, 많으면 1만 개. 그러니 로프 길이만 5km, 10km다. 이삼일에 한 번 건지는데 평균 다섯 개에 하나 꼴로 주꾸미가 들어 있다. 주꾸미가 고둥껍데기에 드는 것은 알을 낳기 위해서다. 이즈음 잡히는 주꾸미는 알배기다.
주꾸미 철은 6월 중순까지. 이 시기에 주꾸미만 나는 게 아니다. 홍원항의 식도락 종목은 수시로 바뀐다. “안 나는 게 없으니께유.” 어민들의 홍원항 자랑. 귀담아들을 만하다. 5월이면 광어와 도미가 난다. 치어를 풀어 키워 낸 자연산이다. 무게 7kg을 넘기는 대물 광어도 심심찮게 잡힌다고 한다. 5월 말에는 ‘자연산 광어 도미 축제’가 열린다.
꽃게가 나는 것도 이즈음이다. 장이 꽉 찬 홍원항 꽃게는 그 맛이 소문났다. 7, 8월 금어기를 지나면 전어 철. 전어축제도 9월 말∼10월 초 열린다. 이때 전어는 잡히는 대로 탱크차에 실려 부산과 경남 마산 등 남해로 팔려간다.
이렇듯 풍성한 해산물이 쉼 없이 나는 서천군 서면의 바다. 더 놀라운 것은 이곳 청정바다에서 수확하는 김이다. 충남 생산량의 86%, 전국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한다(서면개발위원회 자료). 다른 군으로 ‘수출’도 할 정도니 앞으로 서천 김을 찾을 일이다.
축제장인 마량리 바닷가의 동백정은 500년생 동백나무가 동산 하나를 덮은 천연기념물 동백나무숲 꼭대기에 있는 정자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 오역도 너머 수평선으로 지는 낙조와 노을 풍광은 서천 동백꽃 주꾸미축제의 백미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여행정보
◇찾아가기 △서해안고속도로=춘장대 나들목∼21번 국도∼607번 지방도∼동백정(마량포구). 서울 광화문∼경부고속도로∼평택안성 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춘장대 나들목 204km, 나들목∼마량포구 동백정 12km. ◇서천 동백꽃 주꾸미축제=4월 7일까지. 마량리 동백정 앞(700대 수용 주차장). △인라인스케이트장(무료): 주차장. △맛조개잡이 체험(3000원): 월하성 해변. 맛소금(한 봉지 1000원)을 뿌려 삽(대여 1000원)으로 잡는데 한바구니(2kg)만. 문의 041-952-7060, 최병혁 어촌계장(011-436-4391). ◇축제문의 △서면개발위원회(seomyun.ivyro.net): 041-952-9123 △서면사무소(www.seomyeon.go.kr): 041-951-8104
■시원한 국물맛 ‘주꾸미 라면’
“양손에 잡고 서로 비벼주면 흡입판에 낀 개흙이 빠져요. 아니면 소쿠리에 담아 비비시던가.” 홍원항 내 ‘3311회 센터’ 여주인 이송희 씨가 가르쳐준 주꾸미 다듬기다.
산 주꾸미 흡입판의 개흙은 수족관에서 지내는 동안 자연스레 빠진다. 그러나 갓 잡은 것은 다르다. 개흙을 닦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꾸미 피부의 물도 빠져 요리하기에 적당해진다.
홍원항 내 식당에서는 볶음과 무침, 전골도 낸다. 무침은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 볶음은 파 미나리 양파를 넣고 고추장에 살짝 볶아 참기름를 둘러 낸다. 어떻게 조리해도 중요한 것은 살짝만 익히는 것. 그래야 질기지 않고 물도 나지 않아 맛이 좋다.
주꾸미 먹물은 애물단지다. 산 것을 통째로 넣으면 먹물을 쏜다. 구수한 먹물 맛이 좋기는 해도 음식이 온통 시커멓게 변해 볼품이 없어진다. “주둥이로 손가락을 넣어 몸통 속 먹통을 꺼내거나 아니면 가위로 몸통을 잘라 내고 다리만 넣으세요.”(이송희 씨 조언) 자른 몸통은 별도로 푹 익혀 요리(볶음 무침 샤부샤부)에 넣는다.
샤부샤부의 마지막 순서는 주꾸미국물 라면. 면만 넣고 주꾸미 한 마리를 잘게 썰어 넣는다. 집에서 라면 끓일 때도 이렇게 먹으면 된다.
주꾸미 시세는 들쑥날쑥한데 kg당 1만5000∼2만 원 선. 홍원항 식당에서는 샤부샤부 무침, 볶음 모두 kg당 3만 원, 회(900g 정도)는 2만 원. 축제기간 중에는 kg당 2만8000원에 제공한다.
◇홍원항내 식당 △3311회 센터=오전 9시∼오후 9시. 연중무휴. 041-952-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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