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자신이 가르쳤던 모차르트는 35세에 세상을 떴지만 하이든은 그 나이까지 뛰어난 작품 한 편 내놓지 못했다.
모차르트에게 하룻밤에도 작품을 만들어 내는 천재성이 있었다면 하이든에겐 한결같은 성실함이 있었다.
하이든은 1732년 3월 31일 오스트리아의 빈촌 로라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수레 만드는 목수였고 모친은 요리사였다. 음악가로서 성공할 만한 여건은 아니었다.
빈의 성슈테판 대성당 합창단에서 보이 소프라노로 활동하며 음악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나마 변성기를 거치면서 그만둬야 했다.
혼자 음악 공부를 하고 거리에서 연주해 번 돈으로 근근이 10여 년을 보냈다.
그러다 29세에 에스테르하지 대공에게 고용돼 헝가리로 건너갔다.
그곳은 변방이었다. 다른 작곡가와 교류도 없었고 음악의 새로운 경향도 접할 수 없었다.
하이든은 “고립이 독창성을 만들어 냈다”고 적었다.
그는 헝가리에 30여 년을 머물렀다. 그러면서 교향곡의 기본 형식을 만들어 냈고 100편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이름도 얻었다.
하이든 음악 세계의 정점은 1798년 초연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다. 영국에 헨델의 ‘메시아’가 있다면 오스트리아엔 하이든의 ‘천지창조’가 있다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당시 그의 나이 66세. 늦은 성공이었지만 노작곡가는 자신에게 이런 작품을 쓸 기회를 준 신에게 감사하고 찬양하는 듯했다.
“과거 어떤 때도 ‘천지창조’를 작곡할 때만큼 내 마음이 경건했던 적은 없었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나는 작곡을 잘할 수 있는 힘을 주십사고 날마다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기진했다.
“내가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노고와 나를 짓누르는 긴장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감퇴된 기억력과 불안정한 신경 상태가 나를 완전히 분쇄시켜 극도로 우울한 상태에 빠지게 한다는 것도.”
그는 71세에 쓴 ‘현악사중주 83번’을 끝으로 절필했다. 창작을 할 힘이 쇠퇴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후 6년을 더 살았지만 작곡은 없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