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日아사히 사장 “가장 믿을 수 있는 매체는 신문”

  • 입력 2006년 3월 31일 03시 02분


아키야마 고타로 아사히신문 사장은 본보 창간 86주년 기념 특별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이웃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간다면 양국 사이에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아키야마 고타로 아사히신문 사장은 본보 창간 86주년 기념 특별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이웃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간다면 양국 사이에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신문의 발행 부수가 더 늘어나기를 기대하긴 힘들지만 신문의 장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인터넷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새로운 매체가 등장해도 독자들은 신뢰성과 정확성에서 여전히 신문을 믿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대표적 권위지인 아사히신문의 아키야마 고타로(秋山耿太郞·61) 사장은 제휴지인 동아일보의 창간 86주년을 맞아 23일 특별 인터뷰를 하고 “취재와 보도라는 미디어 본연의 기능은 다른 매체에 비해 신문이 확연히 우위”라며 이 시대의 신문에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독자들의 신뢰’라고 강조했다.》

○ 탐사보도 능력, 신문이 가장 탁월

아키야마 사장은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은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일간지로서 오랜 세월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이제는 서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며 “국적은 달라도 한국, 일본 사회의 발전과 양국 관계의 개선이라는 목표는 똑같은 만큼 앞으로도 더욱 활발히 지혜와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신문의 장래를 어떻게 보는지요.

“아사히신문은 조간 800만 부, 석간 370만 부를 발행하고 있는데 이 수준을 계속 지켜 내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신문을 둘러싼 제반 여건이 악화됐지만 그렇다고 신문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미디어가 등장해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매체는 역시 신문이고, 독자들도 정확성 면에서 신문을 제일로 칩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추적해 보도하는 탐사보도의 능력도 신문이 가장 뛰어납니다. 이런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신문의 장래를 너무 불안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본의 신문 구독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일본 신문업계의 강점은 전국에 걸쳐 확립된 배달망입니다. 아사히신문의 경우 3000곳의 전속 판매점에서 8만 명이 신문 배달과 대금 징수, 판촉 활동에 종사하고 있지요. 시골 벽지에도 집집마다 신문을 배달하는 현재의 방식은 존속돼야 합니다. 신문은 국민 공통의 문화재산이자 민주주의의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아키야마 사장은 “일본에서도 젊은 세대가 갈수록 신문과 책을 덜 읽는 경향이 두드러져 걱정”이라며 “매일 아침 10분간 신문을 소리 내어 읽으면 두뇌 회전이 좋아져 건망증도 안 생긴다”고 소개했다.

―아사히신문은 외국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사히신문의 기본은 사실에 충실한 보도, 정확한 보도입니다. 다양한 견해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판단의 재료를 제공하면서 ‘아사히신문은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묻는 자세를 견지해 왔습니다. 좌파냐, 우파냐의 차원이 아니라 신문을 만드는 주체로서 공정한 시각에서 사물을 판단하고 다양한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게 우리의 책임이라고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는 “127년의 역사 속에서 쌓아올린 아사히 고유의 브랜드 파워가 독자들에게 ‘아사히에 실린 기사라면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줬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난해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사건’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 신사참배, 다음 총리땐 부담될 것

“그런 사건이 생기면 신뢰는 땅에 떨어집니다. 한번 잃은 신뢰를 되찾는 건 대단히 힘이 듭니다. 잘못했을 때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거듭 사죄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키야마 사장이 언급한 ‘사건’이란 지난해 총선 보도 과정에서 한 지방주재 기자가 정치인에 대한 취재 메모를 조작해 보고한 내용이 신문 지면에 실린 것을 말한다.

지난해 6월 취임한 아키야마 사장은 독자의 신뢰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기자교육 강화, 편집국 운영체제 개편, 독자모니터제 도입 등 내부 개혁을 이끌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개혁에 나선 취지를 설명해 주십시오.

“지난해 발생한 몇 가지 문제로 아사히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반성했습니다. 기자 교육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데스크 단계에서 기사 내용을 점검하는 태세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기자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회사 내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자, 그렇다면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한번 점검해 보자…. 기존 조직 전체를 해체해 새로 꾸린다는 마음가짐으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한일 관계는 한류 붐의 영향으로 민간 부문의 교류가 활발한 반면 정치 분야에선 마찰 요인이 적지 않습니다. 한일 관계의 장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일본과 한국, 일본과 중국의 관계가 정치 쪽에서 냉랭해진 건 사실입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요.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9월이면 그만둘 것이고, 다음 총리가 누가 되든 이 문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한국, 중국과의 관계가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할 겁니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좀 냉랭한 관계였지만 길게 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일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일본 국민 중 한국 팬이 늘었고, 한국에 대해 강한 관심과 일종의 동경심까지 갖게 됐지요. 두 나라 관계는 정치에서는 일시적으로 냉각됐어도 전체로 보면 앞을 향해 아주 빠르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습니다만….

“어느 사회든 위기 땐 내셔널리즘이 세력을 키우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아시아 전체의 경제 상황을 봐도, 일본의 경제 상황을 봐도 지금이 위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성숙한 사회, 여유 있는 사회로 진행하는 흐름입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가 남아 있지만 경제 유대가 강화되고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해졌으며 문화 교류도 시작됐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극단적인 우경화가 생겨나지 못합니다. 오히려 시민 차원의 교류가 그런 것들을 저지하지 않겠습니까.”

○ 양국 대표지,국가관계 개선에도 한몫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두 나라 언론의 역할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은 그동안 협력관계를 훌륭하게 이어 왔고 우리도 매우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은 상대방이 처한 언론 환경을 이해하고, 이제 각자의 고민에 공감을 하는 수준까지 접근했습니다.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속한 나라는 다르지만 신문을 만드는 목적과 역할은 같습니다. 기자 교류를 계속하면서 두 신문이 보유한 지혜와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두 나라의 거리를 좁히는 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은 오랜 기간 우호협력의 전통을 쌓아 왔습니다. 다방면에 걸친 두 신문사의 교류를 통해 아사히신문의 독자와 동아일보 독자가 각각 상대 국가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됐고, 그런 것들이 일본에서의 한류 붐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양국 사이엔 앞으로도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생겨나겠지만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의 유대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면 양쪽 독자들 간의 유대도 탄탄해져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열렬한 야구팬인 아키야마 사장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서 일본이 한국에 두 번이나 지는 것을 보면서 축구와 마찬가지로 야구에서도 좋은 라이벌이 됐다는 점을 실감했다”며 “지난해 이승엽 선수가 소속된 지바 롯데 마린스 팬인데 WBC에서 보여 준 이 선수의 파워는 대단했다”고 말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아사히 저널리스트 학교▼

아사히신문의 개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아사히 저널리스트 학교’의 신설이다.

4월에 문을 여는 이 학교는 갓 입사한 신입기자에게 취재 윤리와 기사 작성법 등을 가르치는 한편 중견 기자들의 재교육 창구로도 활용된다.

독자의 신뢰를 받는 신문이 되기 위해서는 일선에서 뛰는 기자들의 윤리의식과 시대변화를 반영한 취재기법 습득이 필수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사히신문 관계자는 “저널리스트 학교가 그리는 기자상(像)은 취재력과 판단력, 상상력을 두루 갖춘 언론인”이라며 “입사 때부터 일관된 교육체계를 갖춤으로써 기사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신입기자 대상의 커리큘럼은 △컴퓨터 활용법 △취재기법 △기사작성 실습 등 기본적인 실무 외에 사회인으로서 지켜야 할 매너, 취재원 보호, 독자와 기자의 관계 등 윤리의식에 관한 내용도 다수 포함됐다.

○아키야마 사장은

△1945년 오카야마(岡山) 현 출생

△교토(京都) 대법학부 졸업

△1968년 아사히신문 입사

△정치부장, 제작국장, 편집국장 지냄

△2003년 상무

△2005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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