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인가? 뭐, 19년보다 1년 더 지난 의미인가? 다들 20주년이라는데 잘 모르겠어요."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밴드 연습실도 허무하긴 마찬가지였다. 20주년을 기념하는 포스터나 음반도 없다. 그저 그들이 내민 것은 4년 5개월 만에 발매되는 9집 '리즌 오브 데드 벅스'의 사인 CD이었다. 밴드의 20년 터줏대감 신대철(39)은 '품위' 때문이라고 했다.
"20주년 기념 음반이나 베스트 음반으로 과시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뮤지션은 평생 음악 하는 사람이니까 새로운 음악으로 기념해야죠."
그러나 그 '품위' 덕분에 '시나위'는 20년 간 다른 대접을 받아왔다. 1986년, 한국 대중음악 최초로 '헤비메탈 전문 밴드'를 지향하며 발표했던 그들의 데뷔 음반은 지금까지도 한국 록 음악 역사에 한 장을 차지하는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심지 굵은 록 밴드, '시나위'의 2006년은 새 앨범, 그리고 20주년이 공존하고 있다.
○ 시나위의 20년, 그리고 신대철
"'시나위'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한국 팀 같은 밴드라고 할까요? 록이라면 손가락질부터 했던 시대에 고생해서 록 터전 기반을 마련해놓으니 실력 있는 후배들이 영광을 가져간 셈이죠. 하지만 그런 외로움과 고독함이 '시나위'의 존재 이유였죠.(신대철)
1986년. 신대철과 그의 고교 동창인 보컬 임재범 등 4인조 밴드로 출발한 '시나위'는 데뷔 앨범 타이틀 곡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통해 제대로 '깨는 음악'을 선보였다. 당시 평론가들은 "'주다스 프리스트', 'AC/DC' 같은 외국 메탈 밴드의 음악을 한글로 번안해 부른 느낌"이라며 이들을 극찬했다. 이후 2집 타이틀 곡 '새가 되어 가리'(1987)나 가수들의 잦은 은퇴를 꼬집은 6집 '은퇴선언'(1996)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시나위' 20년 역사에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동안 거쳐 간 스타 멤버들. 김종서 손성훈 김바다 등의 인기 보컬들이나 베이스를 연주했던 서태지, 강기영 등은 늘 밴드 소개 앞에 붙는 수식어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밴드는 앨범을 낼 때 마다 멤버 교체를 겪어야 했다.
"밴드 활동은 늘 불안한 일이에요. 솔로에 대한 욕심도 생기고 상업성, 돈벌이에 대한 유혹 등등… 그나마 내가 탈퇴하지 않아서 20년 동안 활동한 거 아닌가요? 하하"(신대철)
○ 시나위의 미래, 그리고 새 멤버
2003년 신대철과 '부활'의 김태원 등이 만든 프로젝트 밴드 'DOA'에서 인연을 맺은 이경한(29·베이스), 이동엽(31·드럼), 그리고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새 보컬 강한(26)… 신대철이 '시나위'의 역사라면 새 멤버들은 밴드의 미래다.
"생애 처음으로 베이스 연주를 한 곡이 바로 '시나위'의 '페어웰 투 러브'였죠. 10년 후 제 어릴 적 우상이었던 밴드의 멤버가 됐으니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어요."(이경한)
시나위의 9집은 외모만 젊어진 것이 아니다. 타이틀 곡 '작은 날개'나 '슬픔은 잊어' 같은 '헤비메탈' 분위기도 있지만 랩과 힙합 리듬을 위시한 '가면', 모던 록 '메리 고 라운드' 등은 분명 '시나위'의 변화다.
"예전에는 갖가지 규제 때문에, 지금은 MP3 때문에 음악 활동은 늘 힘들어요. 하지만 갈수록 음악 환경은 좋아지는 것 같아요. '시나위' 라이벌들도 많이 생기는 것 같고요. 하하. 우리도 이젠 한 장르만 고집하지는 않아요." (신대철)
여기에 신대철의 아버지 신중현의 '미인'이 리메이크 돼 수록됐다. '음악 짬밥 20년'인 신대철도 이젠 '록의 대부' 아버지 후광에서 벗어날 법도 한데. 대답은 간단했다. "불가능해요. 아버지는 '시나위' 위에 버티고 서 계시니까요."
록의 침체기. 더 이상 '크게 라디오를 켜고' 같은 충격적인 록 음반은 없지만 밴드는 조바심내지 않는다. 신대철의 믿음은 단 하나. "음악은 죽지 않고 좋은 음악은 살아남는다"는 것. 그래서 밴드는 오늘도 '품위' 유지 중이다. 20년 후 '시나위' 인터뷰 때도 그럴까? 결론은 역시 허무했다.
"2년, 아니 2시간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에요. 그저 기타 멘 채 음악하며 늙어가고 있겠죠. '한국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라는 자부심은 여전하겠죠?"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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