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앞두고 영화 공연 음반 출판 등 문화계가 고민하고 있다. 2002년 6월 월드컵 당시 그 열기를 미처 예측하지 못해 거의 ‘초토화’를 당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기 때문. 가히 ‘월드컵 블랙홀’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월드컵에 집중된 탓에 문화상품들은 파리만 날려야 했다.
올해도 과연 그 아픔이 재연될 것인가. 일단 피하는 게 능사라는 쪽이 대세지만 피할 수 없다면 맞서겠다는 전략도 나오고 있다.
피하자는 전략은 영화계에서 두드러진다. 4년 전 극장가는 6월 관객 수가 비수기인 5월보다 40%에 가까운 감소율을 보였다. 그런 탓에 올해는 너나없이 앞 다퉈 개봉하자는 전략이다. 이 바람에 4월 한달 간 무려 40여 편이 개봉된다.
한국 영화로는 이번 달 중 ‘달콤, 살벌한 여인’을 비롯해 ‘마이캡틴 김대출’ ‘맨발의 기봉이’ ‘도마뱀’ ‘사생결단’ ‘연리지’가, 5월 중순에는 ‘호로비츠를 위하여’ ‘국경의 남쪽’ ‘구타 유발자들’이 개봉을 서두르고 있다. 외화는 더 심하다. ‘스위트 룸’ ‘에디슨 시티’ ’달콤한 백수의 사랑 만들기’… 4월에 개봉하는 영화의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홍보 대행사 디어유 하혜령 실장은 “5월에는 ‘다빈치 코드’와 ‘미션 임파서블 3’ 같은 블록버스터들까지 예정돼 있어서 극장가는 4월 개봉 일정을 잡느라 전쟁 분위기”라고 전했다.
공연계 역시 마찬가지다. 김의숙 파임커뮤니케이션 대표는 2002년 연극 ‘생존도시’의 공연기간이 월드컵 기간과 맞물려 큰 피해를 보았다. 그는 “한국이 경기하는 날엔 대학로에 거리응원하는 사람이 너무 몰려서 전동차가 혜화역에 서지도 않았다”고 회고한다. 이러다 보니 다양한 생존전략(?)이 속출한다.
2002 월드컵 당시 무대에 스크린을 설치해 관객들과 경기를 함께 본 뒤 연극 ‘라이어’를 올렸던 파파 프로덕션 이재원 실장은 “경기관람과 공연을 묶은 심야 패키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광화문과 가까운 정동에서 공연하는 바람에 피해를 보았다는 ‘난타’도 이번에는 한국전이 있는 날엔 내국인을 타깃으로 잡고 ‘월드컵 마케팅’(붉은 악마 티셔츠 입고 오면 할인, 공연 전후 2002년 월드컵 자료화면 틀어주기 등)을 펼칠 계획이다.
가요계에서는 음반 발매를 월드컵 이후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 그룹 ‘넥스트’는 새 앨범 ‘666’을 당초 6월 발매할 계획이었으나 월드컵 후로 미뤘다. 박정현, ‘롤러코스터’ 등이 소속된 T엔터테인먼트도 6월에 내려던 그룹 ‘익스’ 데뷔 앨범을 7, 8월로 늦췄다. 소니뮤직은 6월 중 발매계획이 아예 없다. 공연기획사 ‘프라이빗 커브’ 김지연 실장은 “이달 20일 영국 흑인 남자 가수 크레이그 데이비드 공연 이후 모든 공연을 7, 8월로 미룬 상태”라고 전했다. 음반회사 ‘EMI’ 등은 월드컵용 앨범을 따로 준비 중이다.
출판계 역시 5·31지방선거에 이어 월드컵 시즌이 되면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선거나 대형 이벤트 때는 책이 잘 안 팔렸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김영사의 신은영 편집실장은 “2002년 월드컵 당시 회사마다 30∼50%의 매출감소를 겪었기 때문에 올해는 대부분 6월을 피해 주요 책들을 출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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