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식처럼 이 책을 읽었다. 사람은 익을수록 자연에 천착하게 되나 보다. 책이든 영상이든 가볍고 일회적인 것에 열광하는 일상에서, 때로는 교과서처럼 진지한 책을 만나고 싶다.
농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난 아무래도 내가 살고 있는 관내(서울 구로구)에서 쫓겨날지 모르겠다. 자꾸 듣기 싫은 소리를 하게 되니까 말이다.
얼마 전에 우리 아파트의 옆구리로 통해 있는 둑길의 거대한 버드나무가 밤새 잘려 나갔다. 베어진 나무 밑동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자그마치 여섯 개가 넘는 그루터기가 큰 원탁처럼 뽀얗게 톱밥이 얹힌 채 처참하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버드나무는 가느다란 둑 오른쪽에 뿌리를 두고, 온통 왼편의 개천을 향해 가지를 뻗고 늘어져서 작은 숲을 이루곤 했다. 터널처럼 지붕처럼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던 풍경이었단 말이다.
시공사를 추적해서 면담한 후에, 그 공사 구간 내에 있는 다른 버드나무를 더 손대지 못하도록 조처했다. 정말이지 하마터면 그 멋진 나무들이 송두리째 잘려 나갈 뻔했다.
우리는 그동안 별 고민 없이, 갈등 없이, 수백 년 된 고목을 잘라 내는 만행을 얼마나 저질렀던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폼 나게 자란 나무들을 최소한의 고통도 느끼지 않고 파헤쳐 버린 졸속 행정. 자연과 생태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사람들.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읽은 책, ‘나무를 안아보았나요’.
사람들은 오랜 세월 숲을 지켜 온 고목들을 언제든지 베어 낼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공무원들. 숲을 갈아엎고 공원을 만들겠다고 벌목 기계를 앞세워 나타난 공무원에 맞서 조안 말루프는 숲 속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9·11테러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작은 이름표를 매단다. 그리고 그 숲을 ‘9·11 추모의 숲’이라고 명명한다. 정말 멋진 아이디어 아닌가? 어느 누가 테러 희생자들에게 헌정된 나무를 함부로 베어 낼 것인가?
때로는 이런 깊은 맛이 있는 책 읽기에 빠져 보기를 권한다. 허황된 재미로만 구성된 온갖 허풍스러운 것들에서 벗어나, 우리 생명이 영구히 함께할 자연과 생태에 관한 지침서들 말이다.
“어떤 대상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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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숲으로 데려가 반드시 나무를 한 번씩 안아보게 하는 여자, 조안 말루프. 그녀는 서정적인 언어로 우리를 숲 속 나무 사이로 이끈다. 그녀는 나무와 새와 곤충, 진균류들이 서로 어떻게 어우러져 있는지 보여 줌으로써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마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 제제처럼 특정 나무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 떠올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나이가 들지만, 너무 늦게 현명해진다.”
이 책은 후반으로 갈수록 압권이다.
조은일 ‘빵점 엄마, 백점 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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