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의 짧은 기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대장금’과 ‘왕의 남자’의 성공은 고전 번역의 높은 부가가치를 보여 줬다.
우리 고전의 한글화가 ‘대박 콘텐츠’의 실마리가 된 것이다.
이 때문인지 정부의 고전번역원 설립 의지도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쌍림동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한국고전번역원 및 부설 고전번역대학원’ 설치 방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서 교육인적자원부 김광조 차관보는 “우리 고전번역사업은 국민의 문화생활 품격을 높이고 예술계와 자연계에도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며 고전번역원 설립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조선왕조실록의 짧은 기사 한 줄을 바탕으로 제작된 ‘대장금’과 ‘왕의 남자’의 성공도 고전번역원 설립에 힘을 보태 주고 있다.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한 우리 고전의 한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한문고전 번역 작업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했던 게 사실이다. 지난 10년간 한문고전 번역 작업은 민간학술단체인 민족문화추진회(민추·75.5%)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10%)가 주도해 왔다. 한국학술진흥재단(4.5%), 한국학중앙연구원(1.9%), 국사편찬위원회(1.3%) 등 국가기관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문제는 민추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번역사업 경비를 대부분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정부 보조금은 매년 사업비를 정하는 방식이어서 지원비가 들쑥날쑥했다. 또 예산회계연도 내에 성과물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한 책을 여러 명이 나눠 번역할 수밖에 없어 부실한 번역을 낳았다. 이런 구조적 원인으로 번역 인원의 상당수는 고정 직업이 없는 상황이다. 1993년 끝난 조선왕조실록 번역도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충실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게다가 현재의 번역 속도대로라면 국고 문헌(국가 소유 문헌) 번역에만 100년 가까이 걸린다는 것. 지금까지 국고 한문 문헌 3324책 중 번역된 것은 조선왕조실록 등 792책에 불과하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추를 정부출연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1965년 민추 설립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정책당국의 의지 부족이 문제였다. 1992년 이후 고전 번역에 대한 종합계획이 수립되지 못했고 1997년 이후는 관련 정책연구도 중단됐다.
모처럼 정부가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선 가운데 열린 이날 공청회에서 신승운 성균관대 교수팀은 현재 매년 40억여 원의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는 민추를 직원 110명, 연간 예산 80억 원 규모의 정부출연기관으로 확대 전환하는 내용의 고전번역원 설립안을 제시했다. 교육부는 올해 안에 이를 입법화한다는 목표다.
문제는 부설 번역전문대학원 설립 여부. 공청회에 참석한 대다수 학자는 전문인력 배출을 위해 전문대학원 과정도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면밀한 인력 수급계획 없이 매년 석사 15명, 박사 5명씩을 배출하는 대학원을 세울 경우 인력 과잉공급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반대의견도 개진됐다.
고전 한문 국고 문헌의 분량과 번역 현황 | ||||
주요 문헌 | 분량 | 번역 대상 총량 | 번역된 양 | 잔여 책수 |
조선왕조실록 | 약 4700만 자 | 447책 | 447책 | - |
승정원일기 | 약 2억4000만 자 | 1813책 | 241책 | 1572책 |
일성록 | 약 6000만 자 | 516책 | 71책 | 445책 |
비변사등록 | 약 2300만 자 | 180책 | 30책 | 150책 |
각사등록 | 약 5000만 자 | 368책 | 3책 | 365책 |
전체문헌 | 약 4억2000만 자 | 3324책 | 792책 | 2532책 |
자료: 국학 진흥을 위한 기획조사연구팀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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