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6년 3월 28일 서울 명동 시공관. 충북 청주에서 올라온 열네 살 소녀가 해군정훈음악대(서울시향의 전신)의 정기연주회 무대에 섰다. 모차르트 200회 생일을 기념해 열린 이 음악회에서 소녀는 작고한 김생려 선생의 지휘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연주했다.
“주변에서 드레스를 빌려 입으라는데 부끄러워서 입을 수가 없었어요. 집에 있던 색동저고리 한복을 입었는데 시공관이 어찌나 춥던지 속에 교복 바지를 껴입고 운동화를 신은 채 무대에 올랐죠.”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모차르트홀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신수정(64) 씨는 50년 전 자신의 데뷔 무대에서 찍은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이며 함빡 웃음 지었다. 세월은 흘러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 되는 올해, 신 씨는 9일 오후 5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향과 함께 다시 한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협연한다. 데뷔 50주년 기념음악회다.
지휘자는 김생려 선생에서 후배인 정명훈 씨로 바뀌었고, 이제는 드레스 입는 일도 익숙한 노련한 연주자가 됐지만 감회는 새롭기만 하다. 평생 모차르트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간직해 온 신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실내악 전용 연주장 이름도 ‘모차르트 홀’로 지었다.
“모차르트는 너무도 투명하고 순수해서 어린이들이나 천재만 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하잖아요? 50년 전에는 정말 겁도 없이 신나게 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살아가면서 모차르트는 점점 두려운 존재로 다가오더군요. 그의 화음 속에서 숨을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어 나 자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입니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신 씨는 6·25전쟁 중이던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열린 제1회 이화콩쿠르에서 입상했다. 피아노 치는 소녀는 그 시절 지붕 위에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다니던 기차를 타고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레슨을 받았다.
○ 천막 교사서 콩쿠르 우승 못잊어
“지금 연주자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시절이었죠. 부산의 천막 교사에서 열린 이화콩쿠르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제가 벌벌 떨고 있는 것이 불쌍했던지 정명훈 씨 어머니가 제 언 손을 호호 불며 녹여 주셨어요. 그때의 기억은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신 씨는 1961년 제1회 동아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서울대 수석 졸업, 빈 국립음악원 유학, 26세의 나이로 최연소 서울대 교수 임용, 동아일보 주최 런던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내한공연 협연 등 신 씨는 “동아콩쿠르 1회 우승자라는 타이틀은 제 능력 이상으로 제게 많은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서울대 음대 역사상 첫 여성 학장을 맡은 신 씨는 취임 후 연주를 줄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모차르트의 해’인 올해는 거의 매달 연주회 초청을 받고 있다.
“미술은 색깔의 율동이고, 음악은 소리의 그림이라고 말하잖아요. 피아노는 중성적 소리이기 때문에 상상력이 없으면 색깔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실내악 연주와 성악 반주를 꾸준히 해온 것이 피아노 연주의 컬러를 풍성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1만∼5만 원. 02-3700-6300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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