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피’가 등장해야 하는 대목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장면.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자신의 남근을 거세하면 경사진 무대 위에 마련된 수로(水路)의 물이 피로 붉게 변하고 오이디푸스가 이 수로에 들어가 온몸에 피를 묻힌 뒤 다시 무대에 깔린 하얀 소금 바다(진짜 소금이다)에 나뒹군다는 설정이다. 물론 붉은색 물감으로 피를 만들어 내도 되지만 연출을 맡은 김태훈 씨는 무대에서 진짜 피를 쓰고 싶어 한다.
김 씨는 “물감을 쓰는 것과 진짜 피를 쓰는 것은 시각적으로는 똑같지만 후각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다”며 “특히 돼지 피의 경우 다른 동물보다 피비린내가 더 심하다고 하니 관객들이 마지막에 강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연극이 영화나 TV 등의 장르와 다른 점은 바로 이런 현장성”이라며 “나는 관객들이 단순히 감정으로만 이해하는 대신 오감을 통해 작품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민도 만만치 않다. 제작진은 ‘돼지 피 공급업자’에게서 “배우 몸에 혹시라도 상처가 있으면 돼지 피를 통해 병균에 감염될 수 있다”는 주의를 들었기 때문.
오이디푸스 역을 맡아 웃통을 벗은 채 돼지 피를 맨살에 묻혀야 하는 주연 유오성은 처음 이 말을 듣고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난색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김 씨는 “현재 유오성은 동의를 한 상태”라며 “하지만 후각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무대 리허설을 해 봐야 하며 최종 결정은 그 때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10일 진짜 돼지 피를 사용하는 최종 리허설을 한다. 실제 공연에서의 사용 여부는 이후 결정하게 된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